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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700.언어

701 [기 도이처]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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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북스. 2011.10.30 초판 1쇄.

 

원제는 “Through The Language Glass: How Words Color Our World”. 번역서의 제목은 원제와는 어딘가 결이 다르다.

 

 

[1]

 

확인하기 매우 어려운 주제들에는 꿀단지에 파리가 모여들듯이, 알 수 없는 주제에 개똥철학자들이 모여들듯이, 엉터리 사실을 퍼뜨리는 협잡꾼, 사람들을 속이는 사기꾼 예술가, 몽상을 즐기는 괴짜들이 경찰에 붙잡힐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달려들어 주장을 늘어놓는다.

장점도 있겠고, 문제점도 있겠고.

       이 땅은 대중들이 너무 과묵한 게 문제. 공교육이란 게 토론과 에세이를 천시하는 탓에 소신과 소신이 경합하는 장관은 도무지 드물다. 노골적이던 우민정책은 막을 내린 지 오랜데, 우민의 골은 깊고 질기다.

 

 

[2]

 

아무리 빠르게 주장의 흐름을 파악하려 해도 글래드스턴은 항상 두 발 앞서 나가며, 그의 주장에 대해 어떤 반대의견을 제시하려 해도 그것을 떠올리기도 전에 이미 몇 페이지 앞서 모두 반박해버린다.

대단한 찬사. 대개는 2차 자료에 기댈 수밖에 없는 범인으로서는, 관심이 있는, 그러나 잘 모르던, 주제에 대해 이렇게 씌어진 글을 만나면 속이 다 후련해진다.

 

 

[3]

 

문자전통이 있는 언어와 없는 언어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문자가 없는 사회에서 어휘의 수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수동적인 어휘’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어휘를 능동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기억에서 멀어질 것이고, 그렇게 사람들이 그 어휘를 자주 쓰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그 어휘를 아예 들을 수 없고, 그래서 결국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수동적인 어휘: 능동적으로 사용하지 않아도 그 의미를 인식할 수 있는 어휘.

       영어를 쓰는 대학생들이 수동적으로 사용하는 어휘는 4만 단어 정도, 대학 강의에서 사용하는 수동적인 어휘는 7만 3,000단어 정도.

 

 

[4]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정치지도자는 언어의 힘을 맹신하여 공격적인 언어를 언어목록에서 말살해버리기만 하면 정치적 반대의견을 완전히 소탕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침내 우리는 사상범이 문자 그대로 존재할 수 없도록 만들 것이다. 그러한 사상을 표현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으로 끝이 났을까? 세계경제를 벼랑 끝에서 구하려면 ‘탐욕’이라는 말을 없애면 되지 않을까? 진통제를 구입하는 데 들어가는 수조 원을 절약하려면 ‘고통’이라는 말은 없애면 되지 않을까? 전 세계인의 영생불멸을 위해 ‘죽음’이라는 말만 쓰레기통에 처넣으면 되지 않을까?

저자가 조금 억지를 부렸다. 조지 오웰의 ‘사상을 표현한 말’과 저자가 예로 든 고통, 탐욕, 죽음 등은 그 결이 다르다. 실상 꽤나 난해한 주제.

 

 

[5]

 

상관관계에서 인과관계로 즉각 뛰어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다.

첫째, 상관관계에서 인과관계로 즉각 뛰어넘는 것은 위험한 게 아니라, 하면 안 되는 짓이다.

       둘째,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구별은 실용적 측면에서는 그 의미가 점차 퇴색되는 중. 이른바 빅데이터 환경의 산물인데, 실용의 관점에서는 인과관계든 상관관계든 ‘함께 발생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이 유의미하기 때문.

 

 

[6]

 

결국, 우리가 그동안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것들은 단지 친숙한 것일 뿐이었다.

한마디로, 언어가 생각을 지배한다.

 

우리 모국어가 다른 것으로 구분하는 개념, 계속해서 구체화하여 표현하도록 강요하는 정보, 세심하게 파악하도록 요구하는 정보, 언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떠올리게 만드는 이미지, 이 모든 언어습관이 마음의 습관을 만들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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