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비로소 화통도감을 설치했다.
판사 최무선의 말을 따른 것이다.
이때에 원나라의 염초 장인 이원이 최무선과 같은 동네 사람이었다.
최무선이 몰래 그 기술을 물어서
집의 하인들에게 은밀하게 배워서 시험하게 하고 조정에 건의했다. - 고려사절요
- 24년 지방직 9급
1377년(우왕 3년) 최무선의 건의로 화약과 화기 제조를 담당하는 화통도감이 설치되었다.
반응형
2026.09.21
2026.09.21
비로소 화통도감을 설치했다.
판사 최무선의 말을 따른 것이다.
이때에 원나라의 염초 장인 이원이 최무선과 같은 동네 사람이었다.
최무선이 몰래 그 기술을 물어서
집의 하인들에게 은밀하게 배워서 시험하게 하고 조정에 건의했다. - 고려사절요
- 24년 지방직 9급
1377년(우왕 3년) 최무선의 건의로 화약과 화기 제조를 담당하는 화통도감이 설치되었다.
안중근이 1910년 옥중에서 저술한 [동양평화론]은
원래 5편으로 구상되었으나 사형 집행이 앞당겨져 서문과 전감만 집필되었다.
일제의 한국 침략에 대한 비판과
진정한 동양 평화를 위한 한중일 삼국의 대등한 연합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국내에서 삼흥학교 등을 세워 인재 양성에 힘쓰던 안중근은
망명하여 연해주 의병의 우영장으로 국내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1910년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 한능검 심화 53회
정관 16년에 여러 대신들과 건무가 의논하여 개소문을 죽이고자 하였다.
일이 누설되자 개소문은 부병을 모두 불러모아 군병을 사열한다고 말하고 왕궁으로 달려 들어가
건무를 죽인 다음 대양의 아들 장(보장왕)을 왕으로 세우고
스스로 막리지가 되었다. - 구당서 / 동이전
- 한능검 심화 52회
건봉 원년에 개소문이 죽고 아들 남생이 막리지가 되었다.
남생은 아우 남건, 남산과 화목하지 못하여 각자 붕당을 만들어 서로 공격하였다.
남생은 두 아우에게 쫓겨 국내성으로 달아났다. - 구당서 / 동이전
- 한능검 심화 52회
| 광개토대왕, 아신왕 (0) | 2026.09.02 |
|---|---|
| 근초고왕, 고국원왕 (0) | 2026.09.02 |
| 신라 - 대야성, 김춘추 (0) | 2026.08.30 |
| 고구려 - 소수림왕, 불교, 순도 (0) | 2026.08.30 |
| 신라 - 임신서기석 (0) | 2026.08.29 |
군정 장관 아놀드 소장은 1945년 12월 29일 오전 10시 30분
군정청 제1회의실에서 신문 기자단과 회견하고
신탁 통치에 관한 질문에 대략 다음과 같은 견해를 표명하고 일문일답을 하였다.
"신탁 통치는 조선 임시 민주 정부를 수립코자 함이 목적일 것이다.
우선 조선인이 당면한 경제 산업에 있어 유의하며
신탁 관리 문제로 모든 기관이 중지 상태로 들어가지 않기를 요망한다.
현 단계에 이르러 진실한 냉정이 필요할 것이다.
4개국을 믿고 있는 중에 직무에 충실하여야 한다."
- 한능검 심화 51회
나(김구)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위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데 협력하지 않겠다.
- 한능검 기본 60회
우리는 조국 흥망의 관두에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오직 민족 자결 원칙에 의하여 조국의 남북통일과 민주 독립을 촉진해야겠다.
우리 민족자주연맹 중앙집행위원회는
김구 선생과 김규식 박사의 제안에 의하여 실현되는 남북 정치 협상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아울러 그 성공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을 결의한다.
- 한능검 심화 58회
UN이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를 결정하자
민족의 분단을 막고자 김구와 김규식은
1948년 4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김두봉 등의 북한 지도부와 회담하였다.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제주에서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무장대와 이를 진압하는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이 있었고,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북촌 마을에서는 산으로 간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주민이 너븐숭이 일대로 끌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 한능검 심화 79회
김대중 정부는 제주 4·3 사건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였고
노무현 정부는 2003년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정부를 대표하여 공식 사과하였다.
인조에게 이괄 부자가 역적의 우두머리라고 고해바친 자가 있었다.
하지만 인조는 반역은 아닐 것이라고 하면서도,
이괄의 아들인 이전을 잡아오라고 명하였다.
이에 이괄은 군영에 있던 장수들을 위협하여 난을 일으켰다.
- 한능검 심화 58회
인조반정에 공을 세웠으나 2등 공신으로 밀려난 이괄은
그와 아들이 역모를 꾀한다는 고변이 이어지고 조정이 아들을 소환하려 하자
1624년(인조 2년) 난을 일으켰다.
대조영이 죽으니, 발해에서는 고왕이라 하였다.
아들 대무예가 왕위에 올라 영토를 크게 개척하니,
동북의 모든 오랑캐들이 겁을 먹고 그를 섬겼다.
처음에 발해의 왕이 자주 학생들을 경사의 태학에 보내어 고금의 제도를 배우고 익혀 가더니,
드디어 해동성국이 되었다.
그 땅에는 5경 15부 62주가 있다. - 신당서
- 한능검 심화 65회
대조영이 죽으니, 시호를 고왕이라 하였다.
아들 대무예가 왕위에 올라 영토를 크게 개적하니,
동북의 모든 오랑캐들이 두려워하여 신하가 되었다.
또 연호를 인안으로 고쳤다.
대무예가 죽자, 시호를 무왕이라 하였다.
아들 흠무가 왕위에 올라 연호를 대흥으로 고쳤다.
인수가 왕위에 올라 연호를 건흥으로 고치니,
그의 4대조 야발은 조영의 아우이다.
인수는 바다 북쪽의 여러 부를 토벌하고 영역을 크게 넓힌 공이 있다.
- 한능검 심화 75회
고구려 유민들이 중심이 되어 동모산 아래에서 나라를 세우고 그 이름을 진국이라 하였다.
이후 나라 이름을 발해로 바꾸었다.
제2대 무왕이 군사를 보내 등주를 습격하였다.
이에 화가 난 당 현종이 군사를 동원하여 바다를 건너 공격하도록 하고,
신라의 성덕왕에게는 관작을 더해 주며 발해의 남쪽을 치게 하였다.
- 23학년도 수능
발해 무왕은 고구려 옛 땅을 회복하는 데 힘쓰는 한편, 일본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당이 흑수 말갈과 유대를 강화하여 발해를 견제하려 하자,
무왕은 장문휴가 지휘하는 군대로 산둥반도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 26년 지방직 9급
개원 20년에 대무예(무왕)가 장수 장문휴를 보내 해적을 이끌고 등주 자사 위준을 공격하였다.
당 현종은 조서를 내려,
대문예를 보내 유주에 가서 군사를 징발하여 그를 토벌하게 하였다.
더불어 태복원외경 김사란에게 신라에 가서 군사를 일으켜 발해의 남쪽 경계를 공격하게 하였다.
마침 산세가 험하고 날씨는 추운 데다,
눈이 한길이나 쌓여서 병사들 가운데 죽은 자가 절반을 넘어,
끝내 아무런 공 없이 돌아왔다.
- 한능검 심화 52회, 26년 서울시 9급
개원 20년에 발해가 천자의 조정을 원망하며
무왕이 장수 장문휴를 보내 등주를 습격하여 자사 위준을 살해하였습니다.
이에 당 현종은 크게 노하여
하행성 등에게 군사를 징발하여 바다를 건너 공격해 토벌하도록 명하였습니다.
아울러 당에 숙위하고 있던 신라인 김사란을 귀국시켜
신라로 하여금 발해를 공격하도록 하였습니다.
겨울은 깊어 가고 눈이 많이 내려 신라와 당의 군대가 추위에 고생하므로
회군을 명령하였습니다.
- 한능검 심화 71회
| 발해 - 문왕, 효의황후 (0) | 2026.08.27 |
|---|---|
| 신라 - 의상, 부석사, 혜초 (0) | 2026.08.25 |
| 신라 - 기벌포 (0) | 2026.08.25 |
| 검모잠, 안승, 문무왕 (0) | 2026.08.24 |
| 궁예, 광평성 (0) | 2026.08.21 |
비변사의 계사에,
"현재 시전의 병폐로 서울과 지방의 백성이 원망하는 바는 오로지 도고에 있습니다.
시중 시세를 조종하여 홀로 이익을 취하니 그 폐단은 한이 없습니다.
한성부에서 엄히 금하도록 하되
그 가운데 매우 심하게 폐단을 빚는 3강(한강, 용산강, 서강)의 시목전, 염해전과 같은 무리는
그 주모자를 색출하여 형조로 송치해서 엄한 형벌로 다스려
후일을 징계하도록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 한능검 심화 7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