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종묘에 나아가 고하였다.
"짐은 홍범 14조를 하늘에 계신 선대 왕들의 신령께 고하면서
그들이 남기신 업적을 우러러 능히 공적을 이룩하고 감히 어기지 않을 것이니,
밝은 신령께서는 굽어 살피시기 바랍니다."
- 25학년도 수능
1895년 1월 고종은 종묘에 나가 근대적 개혁 강령인 홍범 14조를 선포하였다.
신 유인석이 전하께 글을 올립니다.
신은 국모(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고 전통을 보전하자는 기치 아래 무기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제가 어찌 군사의 일을 배운 적이 있었겠습니까.
다만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무너지려 하기에
하늘이 맡긴 책임을 저버리기 어려워 감히 나선 것일 뿐입니다.
- 25년 5월 고3 학력평가
우리 국모(명성황후)의 원수를 생각하며 이미 이를 갈았는데,
참혹한 일이 더하여 우리 부모에게서 받은 머리털을 풀 베듯이 베어 버리니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이에 감히 의병(을미의병)을 일으키고자 하노라.
- 16년 3월 고1 학력평가
내부대신이 말하기를,
"단발하는 문제는 편한 대로 하게 허락한 만큼 의병(을미의병)을 일으킬 명분이 없는 것이다.
권하노니 칙사가 도착하는 날에 무기를 놓고 집으로 돌아가 생업에 안착하라.
만일 왕명을 거역하면 스스로 죄를 재촉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 한능검 심화 79회
역적들이 국모(명성황후)를 시해(을미사변)하고
억지로 머리카락을 깎게 하니 백성들이 의병(을미의병)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제는 단발을 편한 대로 하게 하였으니
백성들은 흩어져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라.
- 한능검 기본 60회
고종이 의심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새벽에 궁녀가 타는 가마를 이용하여 몰래 건춘문을 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궁궐 내에서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내각 또한 알지 못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도착한 때는 대략 오전 7시 20분쯤이었다.
- 25학년도 수능
1896년 2월부터 1년 동안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겨 국정을 운영했는데
이를 아관파천이라 한다.
을미사변 이후 일본의 압력에 시달리던 고종은
정치적 주도권을 되찾고자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이후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국호를 대한으로 정했으며,
황제가 무한한 군주권을 행사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대한국 국제를 공포하였다.
또한 '옛것을 근본으로 삼고 새건을 참고한다'라는 구본신참을 표방하면서
점진적인 개혁(광무개혁)을 추진하였다.
- 26년 지역인재 9급
1897년 10월 고종은 서울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대한제국을 세웠다.
고종은 구본신참을 원칙으로 광무개혁을 주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