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개헌 안건의 의결에 있어서
찬성표 수가 135이고 재적의원 수가 203인 것은 변하지 않는 수이다.
그러면 재적인 수의 3분의 2는 135.333이니
이 선에 도달하려면 동일한 표수가 있어야 될 것이다.
찬성표가 재적인 수에 도달하거나 또는 정족수 이상 되어야 하거늘
0.333에 도달하지 못하니 그것을 사사오입이라는 구실로 떼어버리고
정족수인 3분의 2와 동일한 수라고 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 되는 것이므로
법조인으로서 이를 이해하기 곤란하다. - 대한변호사협회장 성명
- 한능검 심화 69회
1954년 11월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 중임 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안이 추진되었다.
11월 27일 개헌 정족수 미달로 부결이 선포되었으나
자유당은 사사오입 원리에 따라 가결이라고 주장하며
11월 29일 가결을 선포하였다.
어떠한 비합법적인 비상 수단을 사용하여서라도
이승만 박사와 이기붕 선생이 이번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도록 하라.
세계 역사상 대통령 선거에 소송이 제기된 일이 있느냐?
법은 나중이니 우선 당선시켜 놓고 보아야 한다.
콩밥을 먹어도 내가 먹고 징역을 가도 내가 간다.
국가 대업 수행을 위하여 지시하는 것이니 군수, 서장들은 시키는 대로만 하라.
- 25년 7월 고3 학력평가
우리 학생들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궐기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장 경찰이 이중 삼중으로 교문을 에워싸고 우리의 호소를 막았습니다.
이에 3·15 부정 선거와 김주열의 죽음으로 인해 분노가 극에 달했던 우리는
함성을 지르며 거리로 나아갔습니다.
우리는 '공명선거 다시 하자', '마산 사건 책임져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 25년 5월 고3 학력평가
1960년 3·15 부정선거 결과에 마산 시민과 학생들이 거세게 항의하며 3·15 의거가 일어났다.
3·15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마산상고 김주열의 최루탄에 맞은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었고
이에 분노한 전국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4·19 혁명을 일으켰다.
이승만은 1960년 4월 26일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고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