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북스. 2007.11.15 초판 1쇄. 2015.7.1 개정판 1쇄. 2015.12.28 개정판 3쇄.
[1]
(p.186) 외부세계 사람들은 사전 예고도 없이 라다크 땅으로 몰려들었다. 많은 외부인들은 매일 100달러의 돈을 썼는데, 라다크 사회가 느끼는 그 돈의 강도는 미국에서 어떤 사람이 하루에 5만 달러를 쓰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라다카의 전통적 생활경제에서 돈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의식주 같은 기본적인 요소들은 돈 없이도 제공된다. 생활에 필요한 노동력 역시도 정교하게 짜인 인간관계의 한 부분으로 무상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외국 관광객 한 사람이 하루에 쓰는 돈은 라다크의 가정이 1년 동안 쓰는 돈과 맞먹을 정도였다. 라다크 사람들은 외국인들에게 돈의 용도가 그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 했다. 집에 돌아오면 생존을 위해 돈을 써야 하는 외국인들의 입장이 그들에게는 너무 생소했다. 먹을 것을 구할 때도 의복을 구할 때도 거처를 마련할 때도 모두 돈이 필요했고,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필요한 외국인들의 생활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 외국인들의 모습을 보던 라다크 사람들은 갑자기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문장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 책은 한참을 1970년대 한국을 겪은 사람이라면 하나 낯설 것 없는 재래 환경의 농촌 모습을 지루하게 묘사한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그러나 이윽고 중앙화폐가 등장하면서, ‘돈’이라는 것이 낯익던 아늑한 사회를 철저히 붕괴시킨다. 라다크의 삶 그 자체는 하나 바뀐 것이 없는데 아무 탈 없고 평화롭던 사회가 스스로 ‘가난’을 인식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사회적 문제들이 자연스레 생겨난다.
라다크와 돈의 접촉이 전기 시설의 설치와 같은 선의에 기인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충격. 단지 중앙화폐 체제에 편입되는 것만으로, 결핍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지고, 전통적 사회 질서의 붕괴가 시작된다. 화폐라는 것이 단순한 거래 수단이 아니라, 결핍을 만들어내는 근본 원인이라는 사실에 한 점 의문의 여지도 없다는 듯이.
[2]
(p.158) 자아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착각은 깨달음에 이르는 데 있어 가장 커다란 장애가 된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실체에 대한 믿음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욕망을 낳고 또 그 욕망은 고통을 가져온다.
이 나라는 성인에게조차 성교는 금기의 대상이다. 죽음은 저들 스스로 꺼려하는 주제고. 성교와 죽음에 대한 냉정한 이해만큼 삶의 관조에 직결된 주제가 있기나 할까. 생명의 본질에 눈이 가려진 삶이라 세속적인 욕망 따위나 좇는 것은 아닌지.
[3]
(p.211) 아무도 진정한 교육의 가치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지식을 확장시키고 더욱 풍요롭게 해야 하는 교육 본래의 취지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요즘의 교육은 어린이들을 자신들의 문화와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는 한편, 서구화된 도시 환경에 맞는 편협한 시각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대식 교육은 실제로 아이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의 주변 상황의 흐름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눈가리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자원을 활용할 줄도 모르고 자신들의 세계에서 어떤 역할도 할 줄 모르는 상태로 학교를 마치게 된다.
사원에서의 종교 수련 정도를 제외하면 라다크의 전통 문화 내에는 ‘교육’이라 부를 만한 분리된 과정은 없다. 그들에게 있어 교육이란 공동체와 자연환경 사이의 친밀한 유대관계의 부산물로 얻어지는 것이었다. 어린이들은 모든 것을 할아버지, 할머니, 가족 그리고 친구들로부터 배웠다.
제도권 교육은 대체 무엇을 가르치려 드는 것인지. 의무교육이란 대체 어떤 것들을 미래 세대가 의무적으로 익히기를 기대하는지. 의무고 아니고를 떠나서, 진정한 유익을 가르칠 깜냥이 되기는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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