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베개. 2009.3.9 초판 1쇄.
[1]
한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행복은 오늘을 희생해서 내일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오늘 다음에 내일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고로,
영겁의 세월 동안 존재해온 무한우주에 비하면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한 삶이기에, 우리는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알뜰하게 인생을 즐겨야 한다.
‘지금, 여기’를 살아야 한다. 유일무이한 만고불변의 진리.
[2]
행복은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다. 행복은 각자의 내면에 있는, 만족스러운 심리상태를 말한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입가에 억누를 수 없는 미소가 번지고, 자기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지면 그 사람은 행복하다.
각자의 내면에 있는, 만족스러운 심리상태. 그게 행복. 그러니 남부럽지 혹은 남부끄럽지 않고 말겠다는 강박 따위는 행복과는 도무지 거리가 멀다.
많은 책들이 거듭 인용하는 서은국의 행복론이란,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마디 더 덧붙인다면 “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서은국, <행복의 기원>
[3]
깨달음은 당연해 보이는 것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된다. 의심의 화살을 쏘아보지 않고는 진리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없다. 검증 없는 믿음은 이성의 무덤이다.
‘내 머리로 생각하는’이 무릇 모든 공부의 출발점.
[4]
어리석은 자를 견딜 줄 알라. 똑똑한 자들은 언제나 참을성이 없다. 지식이 많을수록 참을성은 줄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는 지혜>를 인용한 대목.
마침 시간은 앞으로만 흐른다. 해서, 나이 들수록 잡다한 지식이 쌓이면서 타인의 무지에 대한 참을성도 자연스레 줄어든다.
제일 우선해야 할 삶의 원칙은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이며 지혜의 절반은 거기에 달려 있다.
이런 경지에 닿기가 도무지 쉬울 리야.
[5]
자신의 무능을 인식할 수는 있지만 인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한번의 실패조차 치명상이 되는 사회인 것도 한몫을 한다. 해서, 당분간은 그리 살 운명.
[6]
옳은 것이 아니라 힘센 쪽이 이긴다. 옳은 쪽이 우연히 힘도 셀 때, 가끔 정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따름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지점.
[7]
비판하는 쪽의 오류가 비판받는 쪽의 오류를 정당화하는 근거는 될 수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차고 넘친다. 해서, 수세에 몰린 쪽은 흔히 자신을 변호하는 대신 터무니없는 모함으로 상대방을 몰아세우는 전략으로 위기를 타개한다. 당연히 건강한 토론 따위야 물 건너 가고.
[8]
토끼가 자라서 사자가 되는 일은 없다. 작은 토끼는 아무리 자라도 큰 토끼가 될 뿐, 사자나 호랑이가 되지는 않는다. 사자는 처음에 작을지 몰라도 모양과 본성이 처음부터 사자다. 중간에 죽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시련을 이기고 자라면 큰 사자가 된다. 토끼인지 사자인지는 그냥 보면 알 수 있다. 토끼는 처음부터 토끼, 사자는 처음부터 사자다. 자기가 사자라고 착각하는 토끼는 있지만, 자기가 사자인지 모르는 사자는 없다.
재미있는 비유. 동의는 안 한다.
[9]
어떤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게 악이 된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기대가 과한 것.
[10]
악한 목적을 내걸고 악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는 대중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악한 시스템은 거의 언제나 선한 목적을 위해 악한 방법을 정당화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쪽으로 변화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세상의 변화는 내 소망이 다수의 소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이 두 문장은 분명 모순. 대개는 만들어진 시스템에 순응하는 삶을 살다 간다는 점에서 앞쪽 문장이 현실에 좀 더 가깝다.
[11]
통계청의 인구 추계에 따르면 큰 병 없이 마흔 살이 된 사람이라면, 예기치 못한 불행이 덮치지 않는 한, 여든까지는 살 것이라고 한다.
감사하기고 하고, 짜증나기도 하고.
[12]
애국은 무엇인가? 국어사전을 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자기 나라를 사랑함.” 참으로 허무한 설명이다.
지금도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뜻풀이를 고수하는 중.
국립국어원의 기행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이랍시고 수많은 낱말에 그저 한자어를 훈독한 수준의 풀이를 달아 놓은 꼴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 그나마 ‘國’이라는 한자어에 ‘자기’라는 의미를 부여한 걸 두고 칭찬을 해야 하나.
‘애국’과 닮은 처지의 낱말은 ‘애인’. 뜻풀이야, 짐작하듯, ‘남을 사랑함’. 책임이란 낱말에 경기를 떠는 작자들이 일을 맡으면 이런 꼴이 난다. (‘애국’과는 달리 ‘애인’에는 ‘서로 애정을 나누며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사람. 또는 몹시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나름 뜻풀이스러운 서술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자리를 잡았다.)
[13]
위계질서를 가진 모든 조직에서 사람들은 자기의 무능력이 입증되는 지위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
이름 하여 ‘피터의 원리’.
[14]
선과 선의 연대를 위하여.
선의의 시너지가 공동체의 작동 원리이기를 바라던 시절이 있었다. 마침 결이 닮은 문구가 에필로그의 제목에 자리잡았다.
[15]
<피터의 처방>과 합본된 <피터의 원리>를 읽으면서 <피터의 원리> 부분만 따로 책을 내면 좋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책도 ‘권력의 실재' 쪽이 다소 과하다. 일찌기 생떽쥐베리가 지적했듯이, “Perfection is achieved, not when there is nothing more to add, but when there is nothing left to take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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