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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600.예술

606 [명로진] 도쿄 미술관 예술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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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북스. 2013.2.23 초판 1쇄.

 

 

[1]

 

지난해 여름, 이 책의 기획자는 ‘도쿄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창조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글쟁이인 나와 일러스트레이터인 이경국 화백을 엮어 책을 만들어 보자고 건의했다.

머릿속에서 여러 해 묵은 생각이 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런 책에서 깊은 맛을 기대하기는 쉽잖다. 저자들이 공을 들인 흔적은 역력하지만, 문득문득 여행 가이드북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하기사 애당초 머리나 식힐 겸 말랑말랑한 글을 찾아 펴 든 책이기는 하다.

       도쿄국립박물관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박물관은 일생에 딱 두 번, 자신이 초등학생이었을 때와 초등학생인 자기 아이가 가자고 조를 때 간다’고 썼다. 마침 우리 집에도 초등학생이 한 분 거주 중이니, 박물관 투어 스케줄이나 한 번 짜 볼까.

 

 

[2]

 

신미술관은 안으로 들어서면 1층에 넓게 거실이 나타난다. 줄을 서게 되더라도 밖의 날씨에 상관없이 이곳에서 편하게 기다리라는 건축가의 배려가 담겨 있다. 나는 신미술관에서 크리에이티브의 본질을 보았다. 그건 소박한 마음이었다. 미술관 1층에 운동장만 한 대기 공간을 둔 것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순수함이 다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믿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애써 마련한 공간을 뭉텅 포기한 건축가의 배려에 꽂혔지만, 나는 ‘운동장만 한 대기 공간’의 띄어쓰기에 꽂혔다.

       ‘운동장만 하다’와 ‘먹을 만하다’. 우리말에 여러 품사를 겸하는 낱말이 적잖다. ‘만’도 그 중 하나. ‘운동장만 하다’에서는 조사고, ‘먹을 만하다’ 할 때는 명사다. ‘만’ 뒤에 붙어 있는 ‘하다’ 역시 두 문장에서 품사가 다르다. ‘운동장만 하다’에서는 동사, ‘먹을 만하다’에서는 접사.

       한국어 참 어렵다.

 

 

[3]

 

국립 박물관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다. 일단은 어둡고 칙칙하다. 그 다음은 심심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더 좋은 게 있을 텐데 뭔가 감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밋밋할 뻔한 대목을 마지막 문장이 살렸다. 앞의 세 문장을 마지막 문장을 위한 바람잡이들.

 

 

[4]

 

가장 일본적인 것만이 일본 아닌 곳에서 인정을 받는다.

‘일본’을 다른 낱말로 바꿔도, 항상 성립.

 

 

[5]

 

세상의 그 어떤 명소도 그것 자체로 위대하지 않다. 그곳이 담고 있는 역사와 인물, 즉 이야기가 그것을 값지게 하는 것이다.

세심한 고민 없이 공무원들이 예산만 들입다 들이붓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6]

 

2019년 여름, 일본이 무리수를 들고 나선다. 한 줌어치 기득권이 저 하나 편하자고 낸 사달이다. 마침 중국은 제 덩치만 믿고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고, 미국은 대단한 사업가를 정치지도자의 자리에 세웠다. 사업가 출신으로 한국의 정치를 맡았던 양반이 나랏일은 제쳐 두고 제 재산 불리기에 골몰했다는 혐의를 받는 것과는 달리 미국 경영을 맡은 사업가는 나름 제 나라 이익 챙기기에 열심을 떤다. 은근하던 외교판은 이래저래 노골적인 수읽기로 점철된다. 어수룩한 대중은 어느 편에 설 지 갈피를 못 잡고 갈팡거린다. 세상사 어차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아닌 적이 없기는 하다. 고양잇과에서 진화했더라면 없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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