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문집. 2018.5.1 초판 1쇄
[1]
(p.58) 신생아가 태어났을 때 문간에 두르는 새끼줄을 금줄 혹은 인줄, 검줄이라고 한다. 빈부의 격차, 신분의 고하, 지방의 차이를 막론하고 누구든 출생하면 금줄과 인연을 맺는다. “아들이요, 딸이요?” 하고 따져 물을 것도 없다. 대문에 내걸린 새끼줄이 말해준다. 빨간 고추가 걸리면 아들, 솔가지만 걸리면 딸이었으니 금줄은 그야말로 탄생의 상징과 기호였다.
고추의 유래에 대한 역사학계의 통설은 임란 이후 일본 전래설. 1984년 한양대 이성우 교수가 ‘고추의 역사와 품질 평가에 관한 연구’에서 처음 주장했다는데, 해서, 교육부 산하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하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도 고추의 임란 이후 일본 전래설을 묻는 문제가 간혹 출제된다.
그렇기는 해도 고추, 혹은 김치가 워낙 한국인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보니, 그 주재료인 고추가 조선 중기에나 이 땅에 들어왔다는 얘기를 고분고분 수긍하기는 아무래도 쉽잖다.
한국식품연구원의 권대영 박사도 그 중 한 사람인데, 2010년 봄, 고추가 적어도 1천년 전부터 한반도에서 음식으로 널리 쓰였다고 주장했던 그는, 한자나 문헌해석 전공자도 아니면서 괜한 문헌해석보다는 유전공학 같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게 어떻겠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주영하 교수의 조언을 들었는지, 2018년 식량안보세미나의 주제 발표에서 임란 이후 전래설을 반박하면서는 진짜로 식품과학과 생물학적 근거를 보태 나왔다.
주강현에 따르면 왼새끼에 고추를 거는 금줄은 유교문화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존재하던 우리 문화라 하니, 권대영 박사가 듣는다면 좋아라 할 듯. 그 유구한 전통의 남근의 상징으로 뭣하러 굳이 임란 이후에 들여 온 신문물을 쓰겠나.
[2]
(p.5) 뒤틀린 내숭주의는 우리 성문화가 가진 그릇된 한계이고, 지금까지 온갖 병폐를 야기하는 중이다.
뒤틀린 내숭주의. 속시원한 지적. 다른 이의 시선을, 다른 나라의 눈치를 이만치 심하게 의식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3]
(p.129) 재질이 다르면 조각도 달라지는 법. 육지부의 단단한 화강암, 제주도의 독특한 용암바위, 장인의 손끝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현무암을 굳이 용암바위라 이르는 까닭은?
[4]
(p.355) 성과학자 빌헬름 라이히는 편집증적 공격성을 보여주었지만 일생 동안 추구한 급진적 사회개혁 사상을 잘 드러낸 <들어라, 소인배들아>라는 글을 남겼다. 그가 공격한 소인배란 ‘불쌍하고 옹졸한, 역겹고 무능력한, 완고하고 활력이 없으며 속이 텅 빈’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자유를 외치지 못하게 막으려고 안달하면서 자기 자신은 노예가 되는 인간이다.
다른 사람이 자유를 외치지 못하게 막으려 안달하면서 자기 자신은 노예가 되는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늘 있었던 모양.
이웃나라처럼 정부가 공권력을 앞세워 합리를 통제하려 나서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노예를 자청하는 무리는 어찌 이리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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