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470.생물학

472 [후쿠오카 신이치] 동적평형

반응형

은행나무. 2010.3.24 초판 1쇄.

 

 

[1]

 

기초 연구란 한마디로 ‘자연은 이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라는 서술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상품이 되지는 않는다.

수학의 무익에 강렬한 의미를 부여하던 자는 고드프리 하디.

       글쎄…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2]

 

기억을 상실했다가 어느 날 아침 다시 기억이 돌아왔다 가정해 보자. 당신은 자신의 나이를 ‘실감’할 수 있을까? 자신이 몇 살인지는 달력이나 수첩 같은 외부의 기억에 의지했을 때 인식할 수 있는 것이지, 시간에 대해 당신 내부가 느끼는 감각은 지극히 애매모호한 그 무엇일 뿐이다.

현대과학 혹은 기술이란 것이 분명 밤낮으로 발전하고 있겠으나, 아직 하룻밤 공복을 견뎌야 건강상태를 가늠할 수 있고, 주사바늘을 동원해야 체내에 약물을 주입할 수 있고, 인간의 나이를 하루 단위로 재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서운한 대목은 셋째. 어릴 적부터 호적과 실제 나이가 다르다는 말을 들은 탓이다. 나이에 예민스레 굴면, 어차피 일흔 노인이나 일흔하나 노인이나 무슨 차이가 있는가 반문도 있으나, 호적의 오류라는 것이 그저 숫자 하나를 더 세거나 덜 세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정체성의 문제인 탓. 영혼이 단아했던 윤동주가 호적과 실제 나이가 한 살 차이 나는 삶을 살았다는 걸 우연히 알고서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던지.

 

 

[3]

 

만약 다른 생물의 단백질이 그대로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개체의 정보는 우리 자신의 정보와 충돌하여 서로 간섭함으로써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 아토피, 혹은 염증이나 거부반응 등은 모두 그런 생체정보 간의 충돌이다. 그래서 생명체는 일단 자기 입 속으로 들어온 것을 곱게 분해함으로써 그 안에 내포된 다른 개체의 정보를 분해한다. 이것이 소화다. 소화라는 기능의 본질은 결코 음식물이 잘 내려가라고 음식을 잘게 부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해체하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

일상의 소화도 작정하고 곱씹으면 만만찮은 울림이 있다. 그들 나름의 복잡다단한 일상. 나에게는 무심한 일상.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히 끝난다는 데 주목하면 삶이란 얼마나 부질없고 무거운지.

 

 

[4]

 

분해된 아미노산은 갈기갈기 흩어져 다른 개체로부터 온 아미노산과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전혀 다른 단백질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몸 안의 특정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외부의 특정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은 전혀 무의미한 행위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버섯이나 자라에 그렇고 그런 이유로 의미를 두는 이들의 발상이란 기가 찰 노릇.

 

음식으로 섭취한 단백질이 몸 어딘가로 전해져 거기서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한다는 생각은 참으로 초보자적인 생명관이다.

 

 

[5]

 

위의 내부는 ‘신체의 외부’

여기서 ‘위’란 당연히 ‘위장’. 최재천의 ‘topologically pipe’와 같은 내용. 일상에서는 잊고 지내지만 누군가에게는 지당하기 짝이 없는 상식. 지은이는 파이프 대신 가운데가 뚤린 어묵을 비유로 들었는데, 파이프 쪽이 더 실감나게 와닿는 듯.

       한 생 살다가는 대롱 혹은 빨대.

 

 

[6]

 

우리는 오로지 자신의 사유는 뇌에 있으며 뇌가 모든 것을 조절하고 뇌는 모든 실제 감각과 가상의 환상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실증된 것이 아니다.

도발적인 문장.

       2차 지식에 기댄 처지라 그들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아니라면 아닌 줄 알아야 하는 신세. 다행히 저자가 부정한 것은 ‘모든’이라는 딱 한 단어.

 

뇌, 즉 중추신경계를 갖는 우리에게도 소화관을 따라 존재하는 치밀한 말초신경계가 있다. 뇌가 없는 생물체에게 ‘너희들의 마음은 어디에 있니?’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분명 그들의 소화관을 가리킬 것이다.

 

 

[7]

 

“읽고 나면 세상이 달라져 보이는”을 앞세웠으나, 최재천과 도킨스에 익숙한 나는 읽고 나서도 세상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생명의 핵심은 동적평형”이라는 주장은 나름 인상적.

반응형

' > 470.생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472 [이도원] 출근길 생태학  (0) 2023.05.16
472 [차윤정] 숲의 생활사  (0) 2019.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