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북. 2020.7.15 초판 1쇄.
[1]
(p.30) 실뿌리든 굵은 뿌리든 죽으면 썩는다. 이때 분해의 산물인 영양소가 나무를 떠나고 되돌아가는 주기는 대략 뿌리 굵기에 비례한다. 작은 뿌리는 재빨리 분해되고 그 속에 포함되어 있던 영양소는 오래지 않아 식물에 흡수된다. 큰 뿌리는 죽은 다음 썩는 데 긴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뿌리는 크기의 위계에 따라 죽어 발생한 영양소가 재활용되는 시간주기가 다르다. 즉, 하위 수준은 조급하고(반응속도가 빠르고), 상위수준은 대범한(반응속도가 느린) 위계의 일반성을 잘 보여주는 보기가 된다.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해서 언어 역시 그 정도의 전문성이 있으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해서, ‘학술 용어’ 중에는 엉터리가 적잖다. 그들 나름의 사정이야 있겠으나, ‘조급’에 상대되는 낱말은 - 괄호까지 동원한 뜻풀이가 보여 주듯이 - ‘대범’이 아니라 ‘느긋’이다.
[2]
(p.102) 우리나라 매미는 2~6년 동안 땅속에서 애벌레 시절을 보내고 성충이 되는데 미국 매미는 13~17년 정도의 생활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 매미는 그 주기로 대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매미의 몸뚱이는 식물의 영양소 덩어리라 미국 매미의 주기적인 대발생은 생태계에 흥미로운 변화를 일으킨다.
수학만으로는 학생의 관심(수학도 충분히 흥미로운 과목이야)을 끌고 학부모의 비난(왜 복잡한 내용을 다루어서 애들을 괴롭히고 사교육을 조장하는가)을 피하기에는 쉽잖다고 여긴 탓인지 수학 교과서의 집필진들은 다양한 주제를 수학과 버무린다.
소수와 소인수분해는 현행 교육과정에서 중학교 1학년 첫 단원에 등장하는데, 수학자들은 출연주기가 소수인 매미의 존재가 사뭇 반가웠을 것이다. 다만 모든 매미가 그런 것이 아닌데다가, 소수를 영리하게 이용하는 매미가 남의 나라 매미라는 점이 조금은 아쉬웠겠고.
[3]
(p.144) 마을의 형국은 행주형(배 모양 지형)이다. 배에 구멍을 뚫으면 가라앉는다고 믿어 우물을 파지 못하게 했다. 또한 너무 많은 짐을 실으면 침수된다는 이유로 마을의 규모를 제한했다.
마을을 찾아다니면 이와 비슷한 내용을 흔히 듣는다. 경상북도 안동의 하회마을이 그렇다. 지금은 가보기 어려운 평양도 행주형이다. 1894년 2월부터 1897년까지 우리나라를 네 차례 방문했던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에서 대동문 부근의 길이 물로 질척거린 사연을 기술했다.
“하루 종일 물지게를 진 사람들로 북적댄 대동문 일대는 물바다였다.”
행주형이라는 이유로 우물을 파지 못한 평양 사람들은 그때까지 대동강 물을 길어 먹으며 살았던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이 이야기 내용은 미신에 가깝다. 그러나 그런 땅에는 아마도 위생적인 이유로 우물물을 먹기 어렵고, 땅의 제한된 생산성으로 많은 주민을 먹여 살리기도 고달팠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식물학, 환경조경학, 환경학을 전공한 저자는 스스로를 옛 이야기의 과학적 속내를 밝히기에는 아직 엄밀하지 못하고 대략의 가능성을 말하는 정도라 자평하면서 더 이상의 서술은 덧대지 않는데, 두 개의 강을 낀 충적평야지대로 분류되는 평양은 지하수의 수질이 좋지 않은데다가 지하수를 지나치게 퍼내면 지반이 침하될 우려가 있다고 한다.
그저 겉모습이 배를 닮았다는 이유로도 수긍할 수 있는 구멍 뚫지 말고 과한 짐을 싣지 말라는 경고가 현대 지질학의 관점에서도 타당하다니, 인간 사유의 역사는 사뭇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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