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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810.한국문학

814 [양주동] 문주반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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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측의농간. 2017.12.6 초판 1쇄.

 

 

[1]

 

(p.5) 이 책 <문주반생기>는 무애 양주동 선생이 각기 다른 세 종류의 문예지(<신태양>, <자유문학>과 더불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문예지)에 연재했던 산문들을 한 데 모은 것입니다.
       최측의농간판에서는 ‘문, 학, 교단 40년의 회억’이라는 초판의 부제를 삭제하고 <문주반생기>라는 제목만으로 서명을 재단장 하였습니다. 이는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결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글쓰기를 실행하였던 저자의 문류를 ‘수필’이라는 한정된 장르에 구속시키지 않음과 동시에 독서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사실 혼동’의 소지를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양주동의 글에 앞서 발행자 측에서 구구절절 늘어놓은 일러두기의 한 대목.

       양주동의 글쓰기가 워낙 현장감이 넘치는 탓이다. 게다가 호기롭게 ‘회억’이라는 부제까지 붙여 두었으니. 해서, 미리 못박아 둔다. 부디 오해는 거두어 주시라. MSG가 잔뜩 첨가되었으니.

       저자 역시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에 실은 픽션이 대단히 가미되었노라 한 마디를 거든다:

 

(p.594) 처음부터의 의도가 무슨 굉장한 ‘입언’이 아닌 단순한 희문이었고 따라서 ‘글’이 ‘사실’보다도 우위였음이 나의 구구한 핑계요 해조라 할까.

글을 읽다 보면 픽션인 줄 알면서도 문득 사실인 듯 생생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린 왕자가 스러진 사막을 되새기던 셍떽쥐베리와, 군중 속에서 요니 트로츠와 조우하던 에리히 캐스트너. 실상 기분 좋은 착각들이다.

 

 

[2]

 

(p.65) “선생님! ‘기하’란 말이 대관절 무슨 뜻입니까? ‘몇 어찌’라뇨?”

어릴 적 교과서에서 읽은 ‘몇 어찌’ 한 대목이 자꾸 아른거린다. 온전한 글을 한번 찾아 읽으리라.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글쓴이도 유명하고 글도 유명한 ‘몇 어찌’의 원전을 찾기가 좀처럼 쉽잖다. 그러던 중 마침 <문주반생기>란 책을 알게 되었다.

       얼른 구해 읽어 보니 ‘몇 어찌’의 본래 모습은 기억과는 사뭇 다르다. 같은 제목의 글이 있기는 하나 기억 속의 글이 아니요, 몇몇 문장은 다른 글 속에 흩어져 앉았다.

       아쉬우나 이 정도서 추억을 추스릴밖에.

 

 

[3]

 

(p.117) 내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열 살 때부터라 기억한다.

혀를 차기 전에 ‘회억’이 아니니 오해 마시라는 발행인의 신신당부를 떠올리고 볼 일이다. 혹은 당시는 그런 시절이라 여기든지. 1903년 생. 서구에서는 의사가 나서서 담배를 광고하던 시절이다. 세상사란 어지간히도 변덕스럽다. 어쨌거나 문주반생기의 출발점은 여기.

 

 

[4]

 

(p.172) 노산 이은상군은 ‘마산 수재’, 내가 ‘해서 천재’라 자칭했었다. 하루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니, ‘마산 수재’가 내게 묻는 말 -
       “무애가 천재라니, 기억력이 얼마나 용한가 나와 한번 내기해 보세. 임의의 명사 단어들을 한번 듣고 몇 낱이나 차례대로 외우겠나?”

이은상이 ‘차례로 부르는 단어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 나가는’ 기억술을 익힌 직후다. 영문을 모르던 양주동은 단어 외우기 내기에 지고, 넓적 엎드려 방바닥에 코를 댄 채 “오불급야라! 나의 천재 호 취소”를 선언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은상이 출타한 동안 그의 책상 서랍에서 비방을 찾아낸 양주동은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요전엔 내가 숙취로 정신이 희미하여 졌네만, 오늘 다시 정식으로 심판이 있는 데서 내기해 보세. 나도 30어쯤은 외울 듯 하이.”

해서 벌어진 두 번째 내기에서는 비방을 익힌 양주동이 먼저 노산이 부르는 30어 외우기에 성공한다. 곧이어 노산이 외울 단어를 불러 나가는데,

 

“잉어, 붕어, 준치, 칼치, 농어, 가물치, 방어, 모래무치, 도미, 가재미, 삼치, 뱅어, 넙치, 병어, 메기, 숭어, 불거지…”
       열 몇 단어도 못 다 불러 그가 그만 굴복하고 말았다. 똑같은 어족의 행렬들을 ‘마산 수재’가 도저히 ‘이야기’로 꾸밀 수 없었음이 물론이다.
       “‘해서 천재’의 호는 도로 반환!"

 

 

[5]

 

(p.572) 내가 이 고가의 석주를 뜻한 것은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나, 정작 공부를 시작하여 보매 그것이 졸졸간의 일이 아님을 통절히 느꼈다. 첫째 신라대의 가요를 주석키 위하여는 먼저 그 기초적 공부가 되는 조선초 내지 고려대의 어휘, 어법을 면밀히 검토, 졸업할 필요가 있고, 둘째 신라대의 차자법을 요해키 위하여 25수 사뇌가 중의 용자예를 분류, 핵사함은 물론, 고대의 지명, 인명, 관직명 등의 차자, 이문, 금석문 기타 내외 사서에 산견되는 일체의 차자 어휘를 광범위로 수집, 검토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꽤 꾸준한 끈기와 거창한 노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조선고가연구>의 머리말. 국문학사의 기념비적 장면. 세기의 천재요 국보 1호임에 마땅한 까닭. 오구라 신페이의 연구에 비분한 마음이 일어 만사 제쳐 두고 뛰어든 일이다. 학자입네 하면서 한 줌어치 이익에 영혼을 파는 먹물들은 창피를 알야야 한다.

 

(p.590) 내가 맨 처음 고가를 풀 때에 눈에 보이는 것이 모조리 고가 아닌 것이 없었고, 3년 뒤에는 일체의 차자(고가, 지명, 인명)가 모두 한번 보매 쪽쪽이 갈려짐을 체험했다. 이것은 진정 나의 전공으로서 내가 실감한, 좀 지나친 자부이나, 내 딴엔 속임 없는 고백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때만 못한 형편이니 ‘19년 뒤에도 칼날이 새로 숫돌에서 나온 것 같다’는 포정의 말에 부끄럽기 그지없다. 역시 '끈기'가 쇠하여 가는 탓일까, 혹은 ‘시대’가 흐르고 ‘철’이 달라짐에 의하여 나의 ‘원’과 생각이 구태여 그때만큼 비장하고 오롯하지 않은 때문인가.

스스로의 회한에도 불구하고 대가의 경지란 아마도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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