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북스. 2014.8.25 초판 1쇄.
[1]
비판해 보라는 요구에 많은 학생들이 비판이 아닌 ‘비난’을 한다. “네가 싫어! 그냥! 네 얼굴만 봐도 화가 나!” 이런 것은 비난이지 비판이 아니다. 비판은 상대의 입장, 주장, 견해에 관해 ‘좋다, 싫다’를 선언하는 게 아니다. 비판의 상대의 말이 왜 틀렸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비판’과 ‘비난’은 한 글자가 아니라, 두 글자가 다르다.
두 낱말의 ‘비’는 한자어가 서로 달라서, 비판은 ‘평을 한다’는 뜻의 批인 반면, 비판은 ‘아닐 비非’를 쓴다. 그러니 비판이란 ‘상대의 말이 틀린 이유를 따지는 것’이라는 저자의 풀이도 그리 정확한 것이 못 된다.
비판은 批라는 글자가 나타내듯이, 그 무게중심이 ‘틀린’이 아니라 ‘따진다’에 있다.
비판은 실상 ‘비평’이나 ‘평론’과 결이 같은 낱말인데, 다만 다른 사람의 주장을 두고 옳으네 그러네 하는 짓이 다분히 공격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보니, 비판과 비난 사이의 혼동이 발생하는 것이다.
비평이나 평론과는 달리 유독 비판이 비난과 혼동되는 까닭은 아무래도 두 낱말의 낱자가 마침 딱 하나만 다른 데다가, 억측이겠으나, 공산주의가 망가뜨린 ‘동무’라는 우리말과 마찬가지로, 그들 세계의 용어인 ‘자아비판’ 역시 나름 한몫을 한 것은 아닐지.
[2]
손님이 ‘짬뽕’을 주문했는데 주방장이 “그깟 짬뽕보다는 최고의 탕수육을 보여 주지”라며 설쳐 대다간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만 얻어먹을 것이다.
똘똘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이런 잘못을 쉽게 저지른다.
대학 교수인 한 지인은 A에 쓰라는 나랏돈을 받아다가 사업 담당자와 상의도 없이 B에 썼다가 곤욕을 치렀다.
담당 사무관이 고심해서 만든 A라는 기획안이 그에게는 B보다 못한 방책으로 보인 것이다. 본질적인 취지만 놓고 보면 A든 B든 별 차이가 없는 데다가, 성과를 내기에도 A보다는 B쪽이 좀 더 수월했다. 조리를 들어 보면, B쪽이 공공의 이익에 좀 더 부합하는 듯도 싶었다.
해서, 애국심 충만한 교수님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산을 B를 하는 데 열심히 쓰신 것인데, 당연히 난리가 났다.
어디 나쁜 곳에 예산을 쓴 것도 아니요, 사적으로 돈을 빼돌린 것도 아니니, 나름 억울했을 것이다. 그러나 A를 하겠다고 예산을 편성한 담당 사무관의 입장에서 보면 A를 하라고 지급한 예산으로 뜬금없이 B를 하고 앉아 있는 고지식한 교수님의 행태가 도무지 어이없었을 것이다.
의도야 어떻든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하찮게 여긴 결과다.
역지사지라는 것이, 그리 쉬울 리가.
[3]
‘논제를 여러 질문이 들어 있는 체계로 보고 접근하라’든가 ‘원고지를 채우는 길은 문장 길이를 늘이는 게 아니라 글감을 늘리는 것’이라는 등의 조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논술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을 듯싶은데, 입시라는 과정을 다 마친 나로서는, 스티븐 스트로가츠가 <x의 즐거움>에서 말한 것처럼, “세부 사실들을 어떻게 다 이해할지 걱정하는 대신에, 중요한 개념들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는 호사”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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