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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1869 ~ 1948)

 

간디가 법학을 공부하던 런던의 대학에는 간디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교수가 있었다.

어느 점심 시간, 간디가 식당에서 그 교수 옆으로 다가가 앉자 교수가 비꼬는 투로 말했다.

“이보게, 잘 모르는 모양인데, 돼지와 새가 함께 식사하는 경우는 없다네.”

“아, 염려 마세요, 교수님.” 간디가 일어서며 응수했다. “제가 다른 곳으로 날아갈게요.”

 

☆ ☆ ☆

 

간디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교수가 간디에게 물었다.

“돈이 가득 든 자루와 지혜가 가득 든 자루가 길에 놓여 있는데, 그 중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자네는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그야 당연히 돈이 가득 든 자루죠.”

교수가 비웃으며 말했다.

“나라면 지혜가 든 자루를 택했을 것이네.”

간디가 무심히 대꾸했다.

“누구나 자신이 부족한 것을 갖고 싶어하는 것 아니겠어요?”

 

☆ ☆ ☆

 

간디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교수는 간디의 답안지에 ‘멍청이’라고 적어 간디에게 돌려주었다.

이를 본 간디가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 제 답안지에는 점수는 없이 교수님의 서명만 적혀 있던데요?”

 

 

네이피어, 찰스

 

힌두교 사제들이 영국의 인도군 총사령관인 네이피어를 찾아와 영국군이 금지한 전통 풍습인 사티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티는 죽은 남편을 화장할 때 아내가 불속에 뛰어들어 함께 죽는 풍습으로, 이를 따르지 않으면 혹독한 멸시가 따랐고, 심하게 거부하는 경우에는 환각제를 먹인 후 강제로 화장을 하기도 했다.

이런 악습이 사라지지 않은 까닭은 사티를 행하는 사제들이나 친지들이 값비싼 장신구나 막대한 기부금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제들의 요구를 들은 네이피어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사티는 그대들의 유구한 전통 풍습이니 장례식에 쓸 장작 더미를 준비하십시오. 다만 우리에게도 전통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자를 불태워 죽인 사람은 교수형에 처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대들의 장작 더미 옆에 교수대를 만들겠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전통을 따르기로 합시다.”

네이피어의 제안에 힌두교 사제들은 더 이상 사티를 허용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링컨 (1809 ~ 1865)

 

상원의원 선거에서 ‘두 얼굴의 이중인격자’라고 공격받자, 링컨이 응수했다.

“저한테 또 다른 얼굴이 있다면, 이 얼굴을 하고 이 자리에 나섰겠습니까?”

 

 

방정환 (1899 ~ 1931)

 

어느 날 방정환의 집에 강도가 들었다.

강도를 본 방정환이 차분히 말했다.

“돈이 필요하면 달라고 하면 되지, 칼까지 들이대고 그러시오. 돈이 필요하면 내가 드리겠소.”

방정환의 부드러운 태도에 당황한 강도는 방정환이 내민 돈을 주섬주섬 챙겨들었다.

돌아서는 강도의 등에 대고 방정환이 말했다.

“이보시오. 돈을 받았으면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소?”

꾸벅 감사인사를 남기고 강도는 사라졌다.

 

잠시 후 경찰이 한 사내를 데리고 방정환의 집을 찾았다.

그 사내가 조금 전의 강도임을 알아 본 방정환이 밝게 소리쳤다.

“허허, 또 오셨네! 조금 전 드린 돈을 벌써 다 쓰셨단 말이오.”

“이 자가 선생 댁에서 강도질을 했다고 자백을 했습니다.”

“아닙니다. 저 사람은 강도가 아닙니다.” 방정환이 말했다.

“사정이 딱한 듯하여 제가 돈을 드렸습니다. 제 돈을 받고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신 분인데, 어떻게 그런 분이 강도입니까?”

방정환의 말을 들은 경찰은 의하해 하면서도 사내를 풀어 주었다.

경찰이 돌아가자 사내는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서문표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사람인 서문표는 공자의 제자인 자하 밑에서 학문을 익혔다.

업성 태수로 부임한 서문표는 마을 노인들을 불러 고충을 물었다.

“황하의 신인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는 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한 노인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업성의 호족과 아전들은 해마다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을 걷어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는 데 쓰고, 남은 세금은 호족, 아전, 무당들이 나누어 가집니다. 그 시기가 되면 무당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어려운 집안의 딸 중에서 아름다운 처녀를 골라 ‘이 처녀가 하백의 아내가 될 것이니라’ 이르고 폐백을 주고 데려 갑니다. 그렇게 데려간 처녀를 단장을 시켜 물에 띄워 보내면 이내 물에 가라앉고 맙니다. 예쁜 딸이 있는 집들은 무당이 하백에게 시집을 보낼까 두려워 하는데, 만약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지 않으면 홍수가 나서 수많은 백성들이 빠져 죽을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칠 때 제게도 알려 주십시오. 저도 참석하여 처녀를 전송하겠습니다.”

 

이윽고 하백에게 신부를 바치는 날이 되자 서문표도 강가로 나섰다.

큰 무당은 일흔 쯤 된 노인이었는데, 열 명 가량 되는 제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의 신붓감을 데려 오시오. 인물이 어떤지 내가 한번 확인해 보겠소.”

그러자 무당의 제자들이 장막 안에서 처녀를 데리고 나왔다.

처녀를 본 서문표가 말했다.

“이 처녀는 도무지 아름답지가 않소. 큰 무당께서는 수고스럽겠지만 하백에게 가서 다시 어여쁜 처녀를 구해 다음에 보내드리겠다고 전해 주시오.”

서문표는 군사들을 시켜 큰 무당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큰 무당이 빠진 곳을 한참을 지켜보던 서문표가 호령했다.

“어찌 이리 오래 걸리시는가. 어서 제자들을 보내 큰 무당을 재촉하여 오시라고 하시오!”

군사들은 한 제자를 강물에 던졌다.

잠시 후 서문표가 다시 호령했다.

“제자는 왜 또 이리 오래 걸리는가. 다른 제자를 보내 재촉하게 하시오!”

또 다른 제자가 강물에 던져졌다.

한참이 지나 세 번째 제자가 강물에 던져졌다.

세 번째 제자를 강물에 빠뜨리고, 엄중한 자세로 서서 기다리던 서문표가 말했다.

“아무래도 하백에게 내 말이 분명하게 전해지지 않는가 보오. 하백에게 가서 내 말을 정중하게 전하려면 삼로(마을 호족)께서 수고를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삼로께서는 하백에게 가서 내 말을 분명하게 전해 주십시오.”

삼로가 급히 사양하려 하자 서문표가 호령했다.

“어서 가서 태수의 말을 전하고 오시오!”

군졸들이 달려 들어 삼로를 밀고 끌고 하여 강물에 던졌다.

삼로가 빠진 자리를 두 시간이 지나도록 묵묵히 바라보던 서문표가 말했다.

“삼로께서 연로하셔서 하백이 있는 곳까지 못 가신 듯하오. 그러니 나이가 젊은 아전이 가서 내 말을 전해야 하겠소.”

이 말을 들은 아전들은 얼굴색이 흑빛으로 변하며 일제히 머리를 땅에 부딪히며 목숨을 구걸하였다.

“좋소. 그러면 좀 더 기다려 보겠소.”

한참이 지나자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이 손님들을 오래 붙잡고 있는 모양이니 모두들 마치고 돌아가도록 하시오.”

이 일이 있은 후로는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쳐야 한다는 말을 꺼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송동춘

 

송동춘은 조선시대 사람이다.

어린 송동춘이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집안 어른이 다가와 물었다.

“감히 속이지 못하고, 차마 속이지 못하고, 능히 속이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셋은 어떻게 다른고?”

“위엄이 있으면 다른 이가 감히 속이지 못하니, 이는 두려워서입니다. 어진 사람은 다른 이가 차마 속이지 못하니, 이는 마음으로부터 감복하기 때문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다른 이가 능히 속이지 못하니, 이는 그 밝은 지혜에 눌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셋 중 어느 것이 가장 나은가?”

“차마 속이지 못하는 것이 첫째요, 능히 속이지 못하는 것이 그 다음이고, 감히 속이지 못하는 것이 맨 아래입니다.”

 

 

아인슈타인 (1879 ~ 1955)

 

상대성이론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아인슈타인은 수많은 대학에 강연을 다녔다.

어느 날 전속 운전기사인 해리가 말했다.

“교수님 강연을 하도 많이 들어서, 저도 그 강연은 한 글자도 안 틀리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후 브라운 대학으로 향하던 중에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해리, 내가 오늘 몸이 좀 안 좋은데, 마침 브라운 대학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오늘 강연을 나 대신 해 줄 수 있겠소? 나는 운전기사인 척 할 테니.”

아인슈타인의 창백한 표정을 보며 해리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아인슈타인 대신 연단에 오른 해리는 말 그대로 완벽한 강연을 선보였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바로 그때, 청중 속에서 난해한 질문이 날아들었다.

침착하게 질문을 들은 해리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 정말 단순한 질문이네요! 그 정도는 저희 운전기사 양반도 대답하실 수 있죠.”

 

 

쿠머 (1810 ~ 1893)

 

독일의 수학자인 에른스트 쿠머는 셈을 하는 솜씨가 도무지 신통찮아서,

수업 중에 간단한 셈을 할 때면 으레 학생들의 도움을 받곤 했다.

 

어느 날 쿠머는 $ 7 \times 9 $를 계산하려 애쓰고 있었다.

“7 곱하기 9는…, 음…, 그러니까 7에다 9를 곱하면…, 어…”

“61입니다.” 한 학생이 말했다.

쿠머는 칠판에 61이라고 받아 적었다.

 

다른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69인데요?”

그러자 쿠머가 말했다.

“이봐요. 둘 다 답일 수는 없어요. 뭐, 둘 중 하나겠죠.”

 

일설에는, 61이라고 말한 학생에게 “그럴 리 없어요. 그건 7의 배수가 아니에요.”라고 답했단다.

 

 

탈레스 (BC 640 ~ 546)

 

하늘의 별을 살피던 탈레스가 우물에 빠지자

옆에 있던 하녀가 쏘아 붙였다.

“어르신은 하늘의 일을 알아내는 데는 열심이면서, 정작 발 밑 우물은 못 보시네요.”

 

 

파라시오스 (BC 420 ~ 380)

 

그리스의 화가인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는 누가 더 실감나는 그림을 그리는지 실력을 겨루기로 했다.

 

제욱시스가 포도 그림을 펼치자 포도를 쪼아먹으려는 새들이 날아들었다.

“자, 이제 당신의 그림을 보여 주시오.” 제욱시스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 그림은 저 커튼 뒤에 있으니, 직접 걷어 보시오.”

파라시오스의 그림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걷으려던 제욱시스가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아니, 이 커튼이 그림이라니! 내 그림은 새를 속였는데, 파라시오스의 그림은 나를 속였구나!”

 

 

피타고라스 (BC 580 ~ 490)

 

피타고라스도 처음에는 제자가 없었다.

피타고라스는 자기 강의를 들으면 돈을 주겠다면서 젊은이들을 불러 모았다.

 

한 젊은이가 피타고라스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피타고라스는 강의를 마치면 약속대로 젊은이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었다.

 

어느 날 피타고라스가 말했다.

“젊은이, 이제 돈이 떨어져서 더 이상은 강의를 계속할 수 없소.”

그러자 젊은이가 말했다.

“제가 수업료를 내겠습니다. 그러니 강의를 계속해 주세요.”

 

그 이후 피타고라스의 강의를 모두 들은 그 젊은이는 피타고라스의 정식 제자로 입문했다고 한다.

 

 

황희 (1363 ~ 1452)

 

더운 어느 날 길을 가던 황희는 땀을 식히려 나무 그늘에 들어가 앉았다.

나무 그늘의 맞은 편에는 늙은 농부가 누렁 소와 검은 소 두 마리를 데리고 논을 갈고 있었다.

한참을 지켜 보던 황희는 문득 농부에게 소리쳐 물었다.

“어르신, 두 마리 중에 어느 소가 일을 더 잘 합니까?”

그 말을 들은 농부는 일손을 내려놓고 황희가 있는 나무 그늘로 다가와 황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누렁 소가 좀 더 낫습니다.”

“아니, 그만한 일을 가지고 부러 여기까지 오셔서 귓속말까지 하십니까.” 황희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농부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두 마리 모두 힘들여 일하는데, 어느 한쪽이 낫다고 하면 다른 소가 서운해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황희는 크게 깨닫고 농부의 가르침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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