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크로스. 2015.6.10 초판 1쇄.
[1]
한 권의 책을 쓰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뻔뻔함이다.
뻔뻔함이 과한 자들이 간혹 있다. 그런 양반들이 조금만 자제해 주면 책 읽기가 한결 수월하련만.
[2]
‘내가 결단하고, 결단의 책임도 내가 지겠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이 권력의 중추 안에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결단하고, 결단의 책임도 내가 지겠다’의 서민적 버전은 ‘모든 판단은 내가 하고 욕도 내가 먹겠다.’ 권력의 중추가 재선에 목을 맨 선출직 공무원들로 그득한 상태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자세.
[3]
공무원이었던 어느 남자의 이야기다. 직급도 꽤 높고 급여도 괜찮게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 매일매일이 재미없었다. 우연히, 남자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우주는 드넓고 인생은 한 번뿐인데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
이런 생각을 품은 사람이 많을수록 분명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사실 온 세상 사람들이 그럴 필요도 없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많은 것으로 족하다.
어느 저녁 술자리에서 오랜 지인에게 “너는 먹고 살 만큼 돈이 있으면 뭘 하면서 살고 싶냐?”는 객기 어린 질문을 던졌더니, “놀아야지!”라는 답이 냉큼 돌아온다. 괜히 물어봤다.
[4]
“자네, ‘오른쪽’을 정의하라고 하면 어떻게 설명하겠나.”
오른쪽이라. 누가 나한테 물어본다면 가장 쉽게는 ‘왼쪽의 반대말’이라고 하지 않을까.
그럼 왼쪽은? 오른쪽의 반대말이지.
이래서야 개념이 돌고 도니까 ‘정의’가 아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사전에는 대관절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은 단어들이 여봐란 듯이 정의되어 있다.
외부의 자극이 없으면 까맣게 잊고 지내는 생각들도 적잖다. ‘오른쪽’에 대한 사전의 정의는 대강 이런 모습: “북쪽을 바라 보고 섰을 때, 동쪽”.
[5]
연구가나 비평가들은 오늘날 엄청나게 생산되고 소비되고 있는 특정 문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여전히 서구 사상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얻은 몇몇 개념들을 그럴듯하게 자국 상황과 짜 맞추는 데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 하는 편이 힘도 덜 들고 욕도 덜 먹는다. 연구나 비평이 밥벌이에 닿으면 일단은 팔리고 봐야 하는데 사람들은 새로운 생각을 사는 데 그리 후한 편이 못 된다. 칸토어가 정신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하고 고흐의 그림 장사가 신통찮았던 것도 대개 그런 이유. 당사자의 입장에서야 ‘사후에야 비로소 세상이 그 진가를 알아보았다’는 문장 만큼 쓰라린 게 있을까.
[6]
‘그러니까 모두 힘을 합쳐 이 어려움을 타개하자’와 같은 얘기는 잘못하면 저 혼자 ‘오버한다’는 뒷말을 듣기 십상이고, 잘해 봐야 ‘너나 똑바로 하세요’로 귀결되기 때문에 소용없음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의 이런 습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이건희는 ‘니가 노는 건 아무 소리 안 할 테니, 일하겠다고 나서는 사람 발목은 잡지 마라’는, 일견 경박하지만 대단히 실전적인 지침을 천명했다. 조직에 속한 개인이 대개 ‘개인 대 네트워크’ 형태의 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런 지침을 탑다운 형태로 찍어누르는 건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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