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2010.1.15 초판 1쇄.
[1]
우리는 물리적 세계의 차원에 대해서는 광범위하게 일치된 의견을 갖는다. 따라서 물리학에서는 종종 ‘올바른 대답’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행동에 관한 질문은 다르다. 우리는 종종 어떤 행동이 왜 또는 언제 일어날지에 대해 재치 있는 추측 이상을 할 수가 없다. 인간의 행동에 관한 많은 질문에 대해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본질적으로 확률적일 수밖에 없다. 일단 우리의 신념이 확실성이 아니라 확률에 근거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우리를 설득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추론에 훨씬 더 개방적일 것이다. 결국, 우리의 믿음이 틀릴 수도 있는 것이다.
물리적 세계와 인간 행동을 대비시키면 인간 행동에 관해서는 ‘올바른 대답’이 있기 어렵다는 점을, 혹은 물리적 세계와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는 대답이 만들어지는 결이 사뭇 다르다는 점을 수월하게 설득할 수 있겠거니 생각했던 모양. 그러나 과학자들로서는 어리둥절할지도.
베이컨 이래 과학자들은 광범위한 의견 일치에 매진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가설을 세우고 적당한 실험을 설계해 가설이 옳은지 검증한 게 전부. 게다가 물리학자들은 단 한 번도 그들의 답이 ‘올바른 대답’이라 고집한 적이 없다. 단지 그들이 고안한 모델이 자연 현상을, 심지어 가끔은 영문조차 알 길 없으나, 대단히 정확히 설명 혹은 예측해 낸다는 것을 보였을 따름. 해서, 물리학자들은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더 나은 모델이 등장하면 언제든 지금의 모델을 내다버릴 준비가 된 사람들이고, 과학이란 지식체계가 아닌 태도를 지칭하는 것. 그런 점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전공한 저자는 과학계의 자존심을 정통으로 부정한 셈.
[2]
한 사례에서 자신의 입장만을 아는 사람은 그 사례에 대해 거의 모르는 것이다.
특정 의견에 자부심을 느끼려면, 그 의견은 우리가 이해하고 평가한 대안적 의견들로부터 선택한 것이어야 한다.
불쑥 주어진 주제에 대해 급조한 조리를 늘어놓는 대학생 토론 프로그램이 시덥잖은 이유.
소위 전문가입네 하는 자들이 등장하는 토론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참기 어려운 답답함이 치미는 경우가 있는데, 패널 중 누군가의 한심한 지식 수준이 드러날 때다. 자신의 입장만을, 그마저도 간신히, 버텨내는 깜냥의 패널이 토론에 나서는 건 대관절 어디서 나온 만용인지.
토론이 유의미하려면 패널과 사회자는 쌍방의 주장, 그리고 테이블에는 오르지 못한 몇몇 비중있는 입장 정도는 공통으로 충분히 숙지된 상태여야 한다. 그 정도 내공도 없이 토론입네 떠드는 것은 토론이 아니라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3]
어떤 논증을 평가하기 전에 이슈와 결론을 아주 분명하게 확인해야 한다. 여러분에게 무엇을 믿도록 설득하려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논증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논증의 주요 요점을 아는 것이 그 주장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를 결정하는 첫 단계이다.
즉문즉설은 심도 깊은 주제를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라 하기 어렵다. 학창시절 내내 제한된 시간 안에 최선의 답을 내놓는 훈련을 거듭 받고, 사회에 나와서도 납기와의 사투로 허덕이지만, 심사숙고만이 의문의 여지 없는 절대선이라.
[4]
이유를 확인하는 것은 비판적 사고에서 특히 중요하다. 한 의견이 주장되는 이유를 물어서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한다면 그 의견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없다. 이유에 초점을 맞추려면 우리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견해들에 열려 있어야 하고 관대해야 한다. 추론보다 결론에 반응한다면, 토론에서 다루고 있는 결론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결론과 일치하는 것에 재빨리 동의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의 의견을 다시 검토하려면 우리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제시하는 이유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상명하달이 지배하는 세상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스스럼없는 질문이 가능한 문화가 먼저.
[5]
우리는 읽고 들을 때 종종 오해한다. 그것은 단어의 의미가 분명하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사기꾼이나 단어 뒤에 숨으려 들 테지. 명료한 대화를 위해 쌍방 선의와 성의에 최선을 기울이는 것으로 족하다.
하기사 현직 검사조차 “사기 공화국이다!”를 외치는 마당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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