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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360.법학

360 [조국]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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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 2014.6.15 초판 1쇄.

 

 

[1]

 

아직까지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구시대적 인재상을 강요한다. 청소년 시기까지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 대학 입학 후에는 안정된 정규직 직장을 가지는 것만이 삶의 목표인 것처럼 말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소질이 있는지 생각하거나 느껴보지도 못하고 성적과 학점을 관리하고, 스펙을 쌓고, 각종 자격증을 따느라 여념이 없다. 차분히 시집 한 권, 인문학 책 한 권 읽기도 힘들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다.

‘구시대적 인재상’이 아니다. 그래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나라인 탓이다.

       먹고 살 궁리에 성적과 학점과 스펙에 여념이 없는 청춘을 안타까워 하던 저자는 정작 자기 자식은 번듯한 전문직을 가질 수 있도록 나름의 지원을 했던 모양.

       말보다는 삶이 더 많은 것을 증언하는 법.

 

 

[2]

 

덴마크인들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지 여유를 두고 스스로 선택합니다. 국가와 사회는 그런 환경을 보장해줍니다.

얄리의 의문마따나 왜 그들은 되고 우리는 안 되는가.

 

 

[3]

 

하루하루의 삶이 전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공부는 의무가 아니라 권리이자 특혜라고 말할 것이다. 사치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먹고사는 생업은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그 전쟁 같은 삶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생업에 충실하기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왜 삶이 전쟁이 됐는지 알아야 한다. 다른 삶의 방식이 가능한지 공부해야 한다. 그 삶의 방식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도 찾아봐야 한다.

교수 부부에 의사 딸래미.

       김난도가 받은 비판에서 조국이 자유로울 수 있을지.

 

 

[4]

 

남들이 사는 대로 그대로 따라 사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조언을 나누고 싶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쉽잖다.

 

 

[5]

 

많은 세월이 흘러 과거를 돌아보면 당시 그릇됐다고 간주된 것이 사실은 올바른 것이었고, 올바르다고 여겼던 것이 그릇된 것이었다고 평가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 절대적 가치로 여기던 것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바로 그 시기를 직접 보고 느낀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10월 26일 이전까지 유신의 정당성을 설파하던 학교 선생님이 10월 26일 이후 보였던 당황스러운 태도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알아서 기는 놈들이 세상을 좀먹는다.

 

 

[6]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투사’들도 심화되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싸우는 데는 주저했다. 그 결과 정치적 민주화는 경제적 민주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들의 밤은 박정희의 밤과 그리 다르지 않으니.

 

 

[7]

 

현재 추세대로라면, 경제성장은 우리 대부분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압도적 다수인데도 여전히 그 수가 급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보다도 더 심각하고 냉혹한 불평등과 더 불안정한 조건 및 더 많은 추락과 원통함과 모욕과 굴욕을 겪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해서, 스스로는 기득권의 삶을 지향했던 것인가.

       강남 건물주 운운은,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은 것.

 

 

[8]

 

법률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법은 대개 특정 사회의 계급, 계층, 집단의 이익과 욕망, 그리고 꿈이 충돌하고 절충되어 만들어진다.

슬쩍 끼워 넣은 ‘절충’은 희망사항일 뿐.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대의민주주에서는 자신이 속한 계급의 후보자에 투표할 것.

       자영업자라면 자영업자에게. 회사원이라면 회사원에게. 자신의 계급에 속한 후보자가 없다면 가장 가까운 계급의 후보자에게.

       자신의 일상과 동떨어진 삶과 계급을 가진 후보자에 투표하면서, 그가 다른 계급에 호의와 배려를 베풀기를 기대하는 것은 한심한 처사.

 

 

[9]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법이야말로 자유를 지켜줄 최후의 보루라 했다.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시민의 자유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법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법이 오히려 자유를 옥죄는 수단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법은 지배계급의 도구라던 마르크스주의 명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한다.

요컨대 법이란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를 지켜줄 최후의 보루’이자 ‘지배계급의 도구’.

       언제나 그렇듯, 칼이 문제가 아니라 칼을 든 손이 문제.

 

 

[10]

 

존 롤즈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회적 가치들은 이들 가치의 전부 또는 일부분의 불평등한 분배가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 단순한 불평등은 부정의가 된다.”

번드르르.

 

 

[11]

 

아이들은 순진하지만 때로는 잔인하기도 하다. 나치가 집권하던 독일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히틀러 유겐트’의 단원이 되어 유대인들에게 돌을 던졌다. 의미 없이 하는 행동,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은 그저 ‘순진하다’는 말로 미화하기엔 상대가 받는 상처가 너무 쓰리고 고통스럽다.

어릴 적 동네 바보 형한테 해코지를 해대는 아이들에게 화가 많이 났단다. 그러나 나는 지적 미성숙을 이유로 아이들의 부당한 행동을 변호하는 데에 반대하는데, 최근의 촉법소년 문제로 그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아진 듯.

 

 

[12]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13]

 

밀은 평등선거로 인해 다수인 노동자가 사회를 전복하리라 걱정했다던가. 그러나 그럴 기미는 요원.

       약자 스스로 자신을 약자라 인식하지 않는 탓에, 사다리만 있으면 어떻든 약자 탈출이 가능하리라 기대하는 탓에, 약자 연대가 실현될 가능성은 아무래도 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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