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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510.의학

510 [정민석] 해부하다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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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2015.01.27 초판 1쇄. 2015.06.27 초판 3쇄.

 

 

[1]

 

의사는 ‘환자가 얼마나 아플까?’보다 ‘환자가 어째서 아플까?’를 생각해야 한다.

본질을 꿰뚫는 통찰은 현장에서 나는 법.

 

 

[2]

 

키가 똑같은 남녀한테 헐렁한 옷을 입히고 가발을 씌우고 두꺼운 분장을 해서 남녀 차이를 없앴다고 치자. 그래도 남녀를 구별할 수 있는데, 이것은 남녀의 머리뼈가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다. 다른 점의 하나로, 남자는 여자에 비해 눈썹 부위의 머리뼈가 더 앞으로 튀어나왔다.

대개는 2차 성징에 기대어 성별을 구별하려 들 듯. 해서, 가슴 쪽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향하지 않겠나. 전문성은 역시 디테일에.

 

 

[3]

 

‘허리 펴라’는 평안도 사투리로 ‘허리 피라우’이다. ‘허리 피라우’는 뒤집어 봐도 ‘허리 피라우’이다. 이 평안도 사투리는 몸이 뒤집어지든 세상이 뒤집어지든, 꿋꿋하게 허리를 펴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파자까지 동원해야 글자를 뒤집을 수 있다. 처음 누군가는 꽤나 대단한 발상을 했다.

 

 

[4]

 

남성이 사냥하는 원시 시대에 머리카락은 거치적거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대머리 남성이 적자생존하였다.

응? 참말로?

       따로 출처를 밝히지는 않았는데, 주류 학설인지는 의문.

       정색하고 던진 농인가?

 

 

[5]

 

머리를 감을 때 가장 먼저 감는 것은? 눈.

꽤나 초보적인 말장난 퀴즈. 요즘은 이런 농을 치면 아재개그라고 타박을 받는다.

 

 

[6]

 

숨을 안 쉬면 산소 없는 혈액이 온몸으로 퍼진다. 다른 기관은 웬만큼 견디는데, 뇌는 견디지 못해서 금방 다치고 따라서 생명을 잃는다. 숨을 안 쉬고 3분 동안 참을 수 있다고 치자. 뇌가 산소 없이 3분 동안 참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기원은 <운동미니멀리즘>에 수의근과 불수의근에 관해서 이렇게 썼다: “수의근은 우리가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입니다. 불수의근은 심장이나 소화기관처럼 내 생각과 관계없이 작동하는, 자율신경계의 명령을 받는 근육입니다. 그렇다면 호흡은 수의근일까요, 불수의근일까요? 숨은 내 마음대로 늦출 수도, 빠르게 할 수도 있으니 수의근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숨 참아서 자살에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숨을 멈추면 어느 순간에 몸이 개입하여 ‘너 빠져. 내가 알아서 할 거야’ 하며 횡경막을 움직이게 합니다. 즉 호흡근육은 불수의근입니다.”

       이기원의 설명에 이 대목을 덧대면, 산소 없는 혈액에 대해 가장 먼저 불만을 느끼는 기관이 뇌니까, 결국 ‘너 빠져. 내가 알아서 할 거야’의 주체가 뇌라는 얘기다. 나는 ‘생각’이라는 것을 통해서 ‘내 뇌’를 잘 느끼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뇌 속에는 나는 닿을 수 없는 어떤 덩어리가 분명 있다는 소리.

 

 

[7]

 

심장에 분포하는 심장동맥의 다른 이름은 관상동맥이다. 나는 옛날에 관상을 ‘대롱처럼 생긴’이라고 잘못 알았다. “이상하다. 모든 동맥이 대롱처럼 생겼는데, 왜 이것만 관상동맥일까?” 알고 보니까 관상은 ‘왕관처럼 생긴’이었다. 나는 심장을 해부할 때마다 되새긴다. “아! 관상동맥이 줄기가 심장을 감싸는구나. 왕이 왕관을 쓴 것처럼 심장이 관상동맥을 썼구나.”

동음이의어를 핑계 삼아 한자병용을 부르짖는 진영에서 쾌재를 부를 대목. 뜻을 살려 순우리말로 조어를 하면 낱말이 하염없이 길어진다는 점은 참으로 아쉽다. 순우리말로도 담백한 낱말을 여럿 선보인 선조들의 지혜는 대관절 어디서 명맥이 끊어진 것인지.

 

 

[8]

 

모든 과목에서 선생과 학생은 다르게 생각한다. 선생은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을 깨닫는 과목으로 여기고, 학생은 자기가 배우는 과목을 외우는 과목으로 여긴다. 누구의 생각이 맞는지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선생이 하기 나름이다. 즉 깨닫는 과목으로 만들려면, 무턱대고 외우게 하지 말아야 한다.

가르치는 목적을 먼저 짚고 봐야 한다. 그 목적이란 것이 그저 변별에 지나지 않으면 깨닫는 과목이고 암기하는 과목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입시가 대전제가 되는 교육에서 유익을 찾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

 

 

[9]

 

나는 강의실에서 영어 용어로 가르친 다음에, 실습실에서 우리말 새 용어로 가르친다. 새 용어를 이렇게 따지는 학생이 있다. “아직도 쓸개라고 말하는 의사보다 담낭이라고 말하는 의사가 많습니다.” 나는 새 용어로 말하라고 구슬린다. “내가 어릴 때에는 기생충 없는 사람보다 기생충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에는 기생충 있는 것이 옳았겠냐? 많다고 꼭 옳은 것이 아니다. 많은 의사가 담낭이라고 말해도, 너는 쓸개라고 말해라.”

국어를 전공한 자들은 순우리말의 조어 매커니즘을 좀 더 열심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국립국어원이 일상어를 순화했답시고 내놓는 목록을 보면, 기가 찬다.

 

 

[10]

 

겉과 속에 있는 구조물이 사람마다 다르게 생긴 것을 변이라고 부른다. 변이는 생김새가 다를 뿐이지 쓰임새는 괜찮다. 쓰임새가 괜찮지 않으면 기형이라고 부른다. 동맥이 둘로 갈라져도 셋으로 갈라져도, 혈액을 내보내는 동맥의 쓰임새는 괜찮다. 지문이 다르게 생겨도, 손가락바닥을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지문의 쓰임새는 괜찮다. 쌍꺼풀과 보조개도 쓰임새에 문제가 없다. 많은 사람은 자기 얼굴이 못생긴 것을 대수롭게 여기는데, 해부학 선생인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얼굴이 못생긴 것은 변이이지, 기형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못생긴 얼굴을 아무 데서나 뻔뻔하게 내민다.”

박수.

       전문가의 역할이란 아마도 이런 것.

 

 

[11]

 

의대 학생은 꼴찌로 졸업해도 의사가 된다. 따라서 공부하지 않은 학생은 낙제해야 된다.

매정하지만 지당하신 말씀.

       인성이 신통찮은 의사들이나 의대생들 이야기가 가끔 사회면을 오르내린다. 당사자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밥벌이를 앞세우면 안 되는 직업이 분명 있다. ‘calling’과 ‘밥벌이’의 차이.

       북유럽 국가의 기본소득 정책이 최근 무산되었다. 4차산업혁명에 대한 고심이 얕았던 모양. 아쉬운 일이다.

 

 

[12]

 

백인의 키가 큰 것은 조상이 추운 데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백인 중에서도 북유럽 백인이 남유럽 백인보다 키가 큰 것을 보면 뚜렷하다. 왜 그럴까? 사람 몸이 공이라고 치자. 사람 몸의 열 생산은 부피에 비례하고, 열 방출은 표면적에 비례한다. 열 효율은 열 생산을 열 방출로 나눈 값이다. 즉 키가 커야 열 효율이 높고, 추운 데에서 잘 버틸 수 있다. 그래서 백인은 키가 큰 것인데, 난방이 발달한 요즘에는 굳이 키가 클 필요가 없다. 괜히 많이 먹을 뿐이다.

피지컬은 흑인이 단연 탁월한 게 아니었나? 피지컬은 더운 지방 출신인 흑인이 앞서지만 체격은 추운 지방 출신인 백인이 앞선다는 건가? 백인은 삐쭉하게 키가 크고, 흑인은 동글동글하게 키가 큰 건가?

       혼란하다, 혼란해.

 

 

[13]

 

해부학은 사람 몸의 생김새를 가르치는 과목이다. 그런데 어떻게 생겼는지만 가르치면 재미없고, 왜 그렇게 생겼는지도 가르쳐야 재미있다.

공부 치고 안 그런 공부가 없다. 영문을 모르면 공부가 아니다.

 

 

[14]

 

전문가는 자기 분야의 농담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훌륭한 마인드.

       해서, 의대 교수님인 저자는 제 분야의 농담을 열심히 선보인다. 대부분 아재개그이기는 하나.

 

 

[15]

 

오늘은 의대 학생한테 사기꾼 또는 바보가 되지 말라고 가르쳤다. 자기가 아는 것보다 많이 아는 척하면 사기꾼이다. 의사가 사기꾼이면, 치료할 수 없는 환자를 다른 의사에게 보내지 않아서 환자를 해칠 수 있다. 거꾸로 자기가 아는 것보다 조금 아는 척하면 바보이다. 의사가 바보이면 즉 지나치게 겸손하면, 환자가 의사를 믿지 않아서 역시 환자를 해칠 수 있다.

‘사기꾼’에 대한 뜻풀이가 표준국어대사전보다 낫다. 국립국어원은 사기꾼을 “습관적으로 남을 속여 이득을 꾀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굳이 ‘습관적’일 이유는 또 뭔지.

       복잡할 것 없다. 자기가 아는 것보다 많이 아는 척하는 놈이 사기꾼인 것.

 

 

[16]

 

한글을 연구하고 가르친 세종대왕은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다. 그래서 세종대왕의 생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다.

이제는 상식의 범주에 드는 이야기. 나는 자꾸 까먹는다.

 

 

[17]

 

저자는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일생을 걸고 무언가를 배우고 생각하고 깨우친 바를 그냥 묻어두기는 아까워 책으로 내놓은 것만한 게 없다. 정확히 그런 책들 중 하나. 문장은 꽤 투박한데, 왠지 의도적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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