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사, 2002.11.01 초판 1쇄. 2008.04.20 개정판 2쇄
[1]
(p.iii) 중대한 문제는 위대한 발견에 의해서 해결된다. 그러나 어떤 문제의 해결에도 작은 발견은 있게 마련이다. 하찮다고 생각되는 문제일지라도 그 문제가 여러분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여러분의 발명적 재능을 작동시킨다면, 또한 여러분이 그 문제를 여러분 나름의 방법으로 해결한다면, 여러분은 필경 긴장을 경험하고 발견의 승리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다정다감한 나이에 그러한 경험에 접하게 되면 그러한 경험은 정신적 활동에 대한 참맛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평생 동안 여러분의 마음과 개성에 깊은 감명을 남겨줄 것이다.
따라서, 수학 교사는 대단히 좋은 기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교사가 정해진 수업 시간을 학생들로 하여금 틀에 박힌 계산 연습만을 하도록 하는 데 다 써 버린다면, 그것은 학생들의 흥미를 말살해 버리는 것이 되고 그들의 지적 발달을 해치는 결과가 되며, 결국 그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못 쓰는 것이 된다. 그러나 만일 교사가 학생들에게 그들의 지적 수준에 알맞은 문제를 제시함으로써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자극적인 질문을 통해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학생들에게 독자적인 사고에 대한 참맛과 그러한 사고 방법을 제공해 주는 것이 될 것이다.
꿈같은 이야기. 배종수가 시도하려던 수업이 어쩌면 이런 모습이었을지도. 그러나 교실의 현실과는 거리가 사뭇 멀다.
여러 학생을 앞에 두고 준비된 사설을 읊어 나가는 교사에게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적 수준에 알맞은 문제를 제시하기를 기대하기는 아무래도 쉽잖다. 그런 점에서 AI의 발달에 기대를 걸어봄직한 분야 중 하나.
[2]
(p.10) 이해가 되지 않은 문제에 답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저자는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일단 계산부터 서두르는 태도를 지적하려 한 것이기는 하나, 변별을 목적으로 수학에 시간을 덧대는 바람에 학교 수학에서 숙고를 걷어 낸 교육자들이 새겨들을 대목. 그들은 분명 본질을 저버린 채 수학을 가르친다.
소위 킬러문항 한 두 문제로 등급이 갈리던 시절,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킬러문제 푸는 비법을 공개하겠노라 가끔 농을 친다.
반신반의하는 그들에게 내놓는 비법이란 다음과 같다:
일단 손에 든 펜을 내려 놓으라.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풀이를 적어내리려는 그대들의 손을 말려야 한다.
부릉부릉 달아오른 손이 무모한 풀이에 달려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니 펜을 내려 놓으라.
기왕이면 팔짱을 끼는 것도 괜찮다.
펜을 내려놓고 천천히 숨을 고르라.
그리고 찬찬히 문제를 읽어라.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씹어가며 문제를 읽어라.
문제를 다 읽었는가. 이 지점이 킬러문제 풀이 비법의 진정한 핵심이다.
문제를 찬찬히 다 읽고 나면,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문제의 맨 앞으로 돌아가서, 문제를 다시 읽는 것이다!
이리 말하면, 아이들은 그 비법이란 것이 실상 농인 줄을 눈치 채고 피식 웃는다. 하지만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문제를 읽고 또 읽어라.
문제가 무엇을 묻는지 또렷해질 때까지 문제를 거듭 읽어라.
급할 것 없다. 어차피 킬러라잖나.
문제를 충분히 읽은 후에 느긋이 펜을 들어라.
이것이 바로 킬러문제를 푸는 비법이나니.
문제를 충분히 파악하라는 조언이,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무엇이라도 좋으니 손을 움직여 적어보라는 조언과 상충되는 게 아닌가 생각될지 모르겠으나, 이 둘은 그저 문제해결 과정의 선후 단계.
(p.111) 사람들은 흔히 그들이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목표를 적절히 이해하지도 않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이야기하며, 심지어는 야단스럽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바보는 출발점을 주시하고 현인은 목표를 주시한다. 만일 목표가 마음 속에 분명하지 않으면 문제로부터 벗어나 문제를 포기하기 쉽다. 현인은 목적지에서 시작하고 바보는 출발점에서 마친다.
[3]
(p.18) 풀이를 위한 착상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달성하려면 많은 것이 요구된다. 앞서 획득한 지식, 훌륭한 사고 습관, 목적을 향한 집중력 등이 요구되며 여기에 또 한 가지를 더 든다면 행운이 따라야 한다. 여기에 비해, 착상을 실행하는 것은 훨씬 쉽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인내심이다.
학교 수학, 특히 문과 계열의 변별력 문제는 인내심이 핵심적 평가 항목인데, 어차피 공교육을 마치는 순간 학문적 수학과는 별 관계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 있는 교육적 시도인 듯.
[4]
(p.28) 고정적이고 기계적이며 현학적인 절차는 필연적으로 좋지 않다.
이름하여, 공식.
대가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5]
(p.245) 잘 알려진 전설에 나오는 전통적인 수학 교수는 정신나간 사람이다. 그는 항상 잃어버린 우산을 손에 들고 대중 앞에 나타난다. 그는 칠판을 향하고 학생들에게 등을 돌리기를 좋아한다. 그는 a라고 쓰면서 b라고 말하며, c를 뜻하지만 그것은 d가 되어야 한다. 그가 말한 몇 마디 말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져 내려온다.
“이 미분방정식을 풀기 위해서는 답이 떠오를 때까지 그것을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
“이 원리는 너무나 완벽하게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특수한 적용도 가능하지 않다.”
“기하학이란 부정확한 도형에 대한 정확한 추론 기술이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나의 방법은 빙돌아 가는 것이다.”
“방법과 방책의 차이는 무엇인가? 방법이란 여러분이 두 번째 사용하는 방책이다.”
결국, 여러분은 이 전통적 수학 교수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그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수학 교사는 전통적인 수학 교수가 되지 않기를 기원하자.
“제III부 발견술 소사전” 중 “III-49 전통적인 수학 교수”의 전문.
저자는 이 대목에 어떤 통찰, 혹은 위트를 담은 듯싶은데, 아, 평범한 지능에게는 난해하기 그지없고나.
[6]
(p.335) 수학을 배운다는 것은 수학의 기록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을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수학적 ‘지식의 기록’이 흔히 수학적 지식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러한 정보적 지식의 습득 자체가 수학 교육의 주된 목적이 되어 학생들은 그들 자신의 ‘수학하는’ 경험을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한 것을 흡수하는 데 시간을 보내게 되고, 결국 학생들은 말하자면 정보를 저장하는 기록 장치로써 취급되기 쉬운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의 이성이 아닌 남의 이성을 사용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며, 믿기는 많이 하지만 아는 것은 거의 없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는 루소의 말과, “그것을 배우는 사람은 지혜의 실재가 아닌 외양을 가지게 될 뿐이다.”라는 플라톤의 문장은 수학 교육의 주된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웅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배우는 학생들에게 진정한 의미를 갖지 못하는 수학적 지식과 기능의 습득을 위한 학습이 지속되고, 소위 교과서적인 문제의 해결, 그것도 관련된 해결 양식을 기억해 내는데 불과한, ‘문제’ 아닌 소위 연습 문제를 다루는 시간으로 끝난다면, 수학 교육은 그 진정한 가치를 주장하기 어려울 것이며 사고의 불모 현상과 덧없는 망각만이 우리를 공허하게 할 것이다.
수학 교육의 목적을 한 마디로 요약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수학적으로 사고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라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자발적이며 목적 의식이 뚜렷한 의미 있는 사고의 대부분은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수학적으로 사고하도록 가르친다는 것은 수학적인 안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개발한다는 것과 동일시될 수 있을 것이다. 수학 교육은 학생들에게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주어진 정보를 사용하여 수학 내적 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의 개발을 그 첫째 가는 목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바람직한 수학적 사고 태도와 know-how의 개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울대 수학교육과 우정호 교수의 역자후기. 답을 알았던 시점은 적어도 이십여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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