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책. 2019.9.20 초판 1쇄
[1]
저자는 유클리드의 <원론> 첫 문장을 두 번 인용한다. 한번은 “점은 쪼갤 수 없는 것이다”(p.21)라고. 또 한번은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p.77)라고.
당연히 출신 배경이 같은 문장이니 애써 읽으면 하나의 문장이라 여길 수야 있겠으나, 두 문장 사이의 뉘앙스에는 분명 미묘한 차가 있다.
응당 본디 문장이 궁금할 수밖에.
공신력 있는 번역본의 첫 문장을 당장 확인할 방법이 마땅찮아, 차선책 삼아 영문을 뒤져 보니, 유클리드는 첫 문장에 “A point is that of which there is no part”라는 의미를 담았던 모양.
요컨대, 둘째 인용이 직역이요, 첫째 인용이 의역인 셈.
[2]
(p.102) 파이 어머니는 자신의 손바닥으로 가슴을 짚으며 “과학은 세상을 가르쳐줄 순 있지만 여기 있는 건 가르쳐주지 못한다.”라고 응수한다.
얀 마텔의 책 <파이 이야기> 혹은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파이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종교보다 이성을 믿으라 권하자, 독실한 힌두교 신자인 어머니가 응수하는 장면.
인간 장기에 경중이 있겠나마는, 혈액의 순환을 담당하는 기관인 심장이 이성의 알파요 오메가인 뇌와 동등한, 가끔은 우월한 지위를 차지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음을 뜻하는 낱말이 심장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은, 참 묘한 일.
[3]
(p.132) 빛은 반사될 때 반사면에 수직인 법선을 기준으로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은 방향으로 반사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법선’의 뜻풀이는 ‘평면에서 곡선 위의 한 점을 지나고, 이 점에서의 곡선에 대한 접선에 수직인 직선’. 곡면과 접평면도 언급되어 있으나, 그게 그거고.
법선의 첫 글자가 perpendicular의 음역인지 normal line의 번역인지는 분명치 않은데, 어쨌거나, 법선이라는 글자 어디에도 ‘접선에 수직인 직선’이라는 뜻을 짐작할 수 있는 소소한 뉘앙스조차 찾기 쉽잖다는 게 사실이고 보면, 몇몇 조어들은 도무지가 못마땅.
[4]
(p.152) 태양빛이 지구에 평행하게 들어온다고 가정하면…
무세이온 관장이던 에라토스테네스가 여행자의 기록을 읽다가 지구 둘레를 측정할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대목.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그뿐이겠으나, 곱씹어 볼수록 경탄이 절로 난다.
기원 전의 어느 날. 짐작컨대 변변찮은 인공 조명 하나 없던 시절. 대개의 광원이 방사형으로 빛을 뿜는 와중에 유독 태양만큼은 지구에 평행으로 빛을 흩뿌리리라 전제한 것은, 실로 대단한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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