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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을 일으킨 무리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관직을 주고받았다.
박영효가 전후영사, 김옥균은 호조 참판 겸 선혜당상이 되었다.
이들이 국정 개혁안을 정했다.
그 대강은 국권을 키우는 일, 각국과 대등한 외교 관계를 맺는 일,
청과의 관계를 끊는 일, 귀족의 전횡을 억제하는 일,
상민의 농업, 공업, 상업상의 이권을 신장시키는 일, 인재를 등용하는 일이었다.
이리하여 군사권과 재정권이 갑신정변을 일으킨 무리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 27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

 

김옥균 등은 청이 우리 자주권을 침해하는 데 분노하여
일본 공사와 갑신정변을 일으켜 '일본당'으로 지목되었다.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온 나라가 그를 역적이라 하였다.
나는 조정에 몸을 담고 있어
그를 토벌하여 죽여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러나 김옥균과 나의 마음은 그 뜻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사랑하는 데서 나온 것이었다.                    - 속음청사

- 한능검 심화 75회

 

갑신정변(1884년)은 청일 간에 톈진 조약이 체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톈진 조약에서 청과 일본은 조선에 군대를 파견할 때 서로 알리기로 함으로써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조정이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자

일본군이 동반 파병함으로써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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