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 2008.2.10 초판 1쇄. 2016.11.11 개정판 1쇄.
[1]
수학교양서 저자들이 ‘수학의 무용성’을 언급할 때 빠짐없이 인용하는 책. 확증편향이 작동한 나는 그들이 인용하는 대목은 스쳐 지나갔다.
[2]
(p.15) 전문적인 수학자가 수학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우울한 경험이다. 수학자의 본분은 무언가 새로운 정리를 증명하면서 수학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지, 자신이나 다른 수학자들이 이루어 놓은 것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가 정치 기자들을 경멸하고 예술가가 미술 평론가들을 혐오하는 것처럼 생리학자, 물리학자, 수학자들도 대개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다. 창조하는 사람이 해설하는 사람에 대해 갖는 경멸감은 무엇보다 의미심장하고 명백히 정당한 것이다. 설명이나 비평, 평론 등은 이류급 인간들이 하는 일이다.
순수수학은 학교수학과 결별한 지 오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수학과 학교수학을 혼동하는 이들이 여전히 적잖다.
[3]
(p.17) 내가 수학에 관련된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이 예순을 넘긴 여타의 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내게 명료한 정신과 에너지, 또는 직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해낼 만한 인내심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게 뭐가 됐든 간에, 무언가를 비교적 잘할 수 있는 사람은 5~10% 정도이고, 무언가를 정말로 잘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p.24), 수학은 젊은 사람들을 위한 학문이라는 신념의 소유자다.(p.28)
(p.28) 이쯤에서 나이에 관한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 수학자에게 나이란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모든 수학자들은 수학이 젊은 사람들을 위한 학문임을 알고 있다. 예술이나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는 수학에서 더욱 절실한 현실이다.
뉴턴은 50세에 수학을 포기했으며, 수학에 대한 열정을 잃은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이었다. 40세 무렵 그는 이미 자신의 창조적 두뇌가 유효 기간을 넘겼음을 깨달았다. 그의 위대한 아이디어들은 1666년경에 밝혀진 것인데, 이때 그의 나이는 24세였다.
뉴턴은 거의 40세 이전까지 굵직굵직한 발견을 했지만, 그 뒤로는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내는 대신 기존의 것들을 다듬고 보완하는 데 주력했다.
내가 아는 한, 50세 이상의 수학자에 의해 중요한 수학적 진보가 이루어진 경우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은 40세 미만인 수학자에게만 수여되는데, 저자는 그보다는 조금 더 관대해서, 50세 이상의 수학자에 의해 중요한 수학적 진보가 이루어진 경우는 없었노라 주장한다.
어릴 적부터 KMO나 IMO를 기웃거리는 학생과 학부모 중에서, 수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이런 특성에 조바심내면서, 하루라도 젊을 때 나름의 성취를 이루리라 애쓰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저 대학 입시에서 어떻게든 우위에 서려는 세속적인 몸짓이 아닐지.
수학의 무용성을 찬미한 저자로서는 기가 막힐 듯.
[4]
(p.51) 대중이 원하는 것은 지적인 자극이며, 수학의 자극만큼 확실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수학자의 오판이려나.
어렴풋이나마 나 역시 이런 생각이 가끔은 드는데, 입시수학이 판치는 세상에서 학교수학과 대중을 잇는 연결 고리가 혹시 있지 않을지.
[5]
(p.70) 공학자가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정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대강 유효숫자 열 자리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리수는 공학자에게 확실히 관심 밖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공학자는 오직 근사치에 관심이 있으며, 근사치는 모두 유리수이기 때문이다.
수학자는 과학자나 공학자가 그들과 같은 부류라 여겨지는 걸 은근히 기분 나빠하는 눈치다. 그들 사이에 나름의 간극이 있는 모양. <수학의 유혹 2>에서 미적분의 논리를 설명하던 강석진도 물리학자, 공학자, 경제학자들의 수학을 ‘엉터리 계산’이라 이름 붙인다. 직업 수학자의 눈에는 공학자나 수포자나 엉터리 수학이기는 매한가지인 셈.
[6]
(p.125) 모든 예비 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초중등학교 시절에 내가 선생님보다 훨씬 나을 때가 자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빈도는 훨씬 더 낮지만 케임브리지 대에서도 때로는 내 실력이 교수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제로 몹시 무식했다. 심지어 장차 남은 인생을 모두 바쳐 연구하게 될 과목의 우등 시험을 치를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몹시 무식했다”는 겸손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늘어선 문장들은 휘황찬란하다. 학창시절 “달리기 대회에 나갔는데, 내 뒤에 달리는 애가 엄청 잘 달리더라고” 식의 말장난을 재밌어 하던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정도 수준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 잘난 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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