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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320.경제학

325 [명로진] 남자의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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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카우. 2013.4.5 초판 1쇄.

 

 

[1]

 

단지 근육 있고 권력 있고 돈 많고 잘난 척하는 게 남자의 전부는 아니다. 감히 멋진 남자를 규정하라면 부드러우면서도 용감하고, 심지가 굳고 의리가 있으며, 평정심을 가진 사람. 약자와 여자들을 보호할 줄 알고 책임감 있고 말과 행동이 (되도록)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쉽잖다. 이 정도면 없다고 봐야.

 

 

[2]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해 치장하려 해도 소용없다. 남자가 권력을 원하는 이유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권력을 잡고 나서 그 권력을 오로지 민중을 위해, 백성을 위해, 국민을 위해 운용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권력자 중 열에 아홉은 그저 제 한 몸의 안위와 야망을 위해 권력을 이용했을 뿐이다. 대중들은 늘 영웅이 나타나기를 염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도 또 한 명의 대도大盜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굳이 ‘남자’라는 주어를 내세울 필요도 없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다고 리처드 도킨스가 밝힌 지 오래.

 

 

[3]

 

아마추어는 모든 부분에 다 힘을 줘서 일한다. 프로는 힘줄 때만 정확히 힘준다.

인상적인 관찰력.

 

 

[4]

 

남의 일 해주면서 고수 됐다는 사람 못 봤다.

밥벌이란 게 대개 그런 모습. 남의 일만 해야 하는 대표적인 직업이 공무원일 텐데, 이 나라는 남의 일만 해야 하는 그 직장에 입사하려고 안달복달하는 청춘들로 차고 넘친다.

       자기 일 하면서 사는 사람이 많을수록 살기 좋은 세상인 것이야 두 말 할 필요도 없는데 그런 세상 된다는 게 이다지도 힘든지.

 

 

[5]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는 것은 화를 참는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같이 살든지, 신경 끄든지.

       그 미묘한 균형이 도무지 어려워 오늘도 인간사는 시끌벅적. 이 모든 게 이기적 유전자의 소행이라니, 흥미롭고 흥미롭다.

 

 

[6]

 

인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어차피 당신은 살아 나가지 못할 테니까.

조금 더 구질구질한 사설은 다음과 같은 모습:

 

“죽음이란 다음의 둘 중 하나입니다. 즉 아무것도 아닌 무 자체. 이렇게 되면 죽은 사람은 아무런 감각도 없게 됩니다. 꿈 한 번 꾸지도 않고 자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지요. 그렇다면 죽음은 기대 이상의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둘째, 죽음은 영혼이 여기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바꿔서 옮겨 사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죽은 사람은 모두 또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우리가 삶 이후에 대해 알 수 없다면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은 모순이다.

어쨌거나 이게 정답. 타자의 욕망만 내려 놓으면 된다. 다만 도무지 쉽잖을 따름.

 

 

[7]

 

대체로 글을 읽는 자는 반드시 단정하게 손을 마주 잡고 반듯하게 앉아서 공손히 책을 펴놓고 마음을 오로지하고 뜻을 모아 정밀하게 생각하고 오래 읽어 그 행할 일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그 글의 의미와 뜻을 깊이 터득하고 글 구절마다 반드시 자기가 실천할 방법을 구해본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고 입으로만 글을 읽을 뿐 자기 마음으로는 이를 본받지 않고, 또 몸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책은 책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을 뿐이니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대체로 글을 읽는 데는 반드시 한 가지 책을 읽어서 그 의리와 뜻을 모두 깨달아 모두 통달하고 의심이 없이 된 연후에라야 비로소 다른 책을 읽을 것이고, 여러 가지 책을 탐내서 이것저것을 얻으려고 바쁘고 분주하게 섭렵해서는 안 된다.

율곡 이이가 쓴 <격몽요결> ‘독서장’의 한 대목. 당시에는 책인지 쓰레긴지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가 드물었던 모양. ‘그러니 당신도 (책을) 써라’는 세상인 요즘은 책 같잖은 책도 넘쳐난다.

 

 

[8]

 

여행은 어딘가에 갔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 가서 그 지역의 매력을 얼마나 만끽하였는가 하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 독서 또한 마찬가지이다.

좋은 말이기는 한데, 여행이고 독서고 좀처럼 안 한다는 게 문제.

 

 

[9]

 

빨리 망하려면 도박을 하고 천천히 망하려면 아이한테 음악 교육을 시키라고 했다. 나는 천천히 망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불쑥 등장하는 글쟁이들의 위트. 책을 읽는 재미.

 

뿌리째 뽑혀나간 사시나무 등걸들이 식사시간에 늦은 악어떼들처럼 하류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 덕 파인, <굿바이, 스바루>

마이클은 거실 소파에 앉아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이고 손은 ‘물고기가 이만하더라고요’ 자세를 취했다.

- A. J. 제이콥스, <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

최근 인상 깊었던 구절은 김웅의 <검사내전>.

 

내가 검찰에 들어온 뒤 이 조직은 늘 추문과 사고에 휩싸였다. 그때마다 뼈를 깎는 각오로 일신하겠다는 발표를 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깎을 뼈도 없는 연체동물이 된 것 같았다.

- 김웅, <검사내전>

마냥 심각한 것보다 이런 구절이 무심히 등장하는 책이 백번 낫다.

 

 

[10]

 

대부분의 아빠들은 아이가 뭔가를 열심히 하면 ‘아, 내가 더 열심히 일해서 저 아이 뒷바라지를 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남자가 파멸하는 지름길이다.

명로진이고 김정운이고 문유석이고 결국 메시지는 하나: “타자의 욕망일랑 내려놓고 본인의 삶을 사시라.”

 

 

[11]

 

휴가는 어머니로 대표되는 이전 세대의 가족들과 아내로 대표되는 현 세대의 가족들, 아이로 대표되는 미래 세대의 가족들을 무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짐을 싸는 것, 문을 박차고 나가는 것에서 비롯한다. 자, 남자들을 위해 휴가를 정의하겠다.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휴가 아니다. 아내, 아이들과 함께 사이판을 다녀왔다. 휴가 아니다. 설 연휴 기간 동안 처가댁에 다녀왔다. 휴가 아니다. 사장님과 함께 중국 골프 여행을 다녀왔다. 휴가 아니다. 거래처 사람과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3일 동안 룸살롱을 전전했다. 휴가 아니다. ‘인후염으로 4박 5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차라리 휴가다. 내가 생각하는 휴가는 이런 것이다. 카리브 해 연안으로 떠난다. 말은 통하지 않는 것이 좋다. 벨리즈나 칸쿤, 자메이카처럼 들어는 봤으나 낯선 여행지를 택한다. 한적한 해변에 적당한 가격의 리조트를 선택한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여야 한다. 리조트 안에는 수영장과 두어 개의 식당이 있어야 한다. 누가 깨우지 않으므로 잠을 실컷 잔다. 거기까지 가서 호들갑을 떨며 분 단위로 시간표를 짜서 돌아다니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는다. 술은 와인이나 맥주 한두 잔 정도만 마신다. 더운 낮에는 시원한 바닷속으로 들어가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한다. 저녁이면 라이브 밴드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한다. 밤이 되면 이국의 향기가 가득하고 멋진 여자들이 많은 바에 간다. 마음이 열려 있는 친구들을 사귄다. 어떤 날은 가이드도 지도도 사전 지식도 없이 터미널에서 버스를 잡아타고 서너 시간 걸리는 시골 마을로 가본다. 그곳에서 며칠 묵었다 리조트로 돌아온다. 종종 길을 잃는 게 좋다. 관광지에 가지만 그걸 1순위로 삼지 않는다. 비가 오고 해일이 몰아치는 날에는 하루 종일 리조트 객실 발코니에서 책을 읽는다. 가끔, 뭔가 잊은 것 같을 때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한국의 집에 전화를 해서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린다. 가장 중요한 것. 여행 기간은 한 달이 적당하다.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휴가일 듯.

       이 대목에 저자는 “휴가의 전제조건은 ‘열심히 일한 당신’”이라 덧붙인다.

       평생 현역. 즐거운 삶의 대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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