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희극. 2018.4.20 초판 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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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 우리는 빅뱅으로 인해 처음 째깍거리기 시작한 시간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믿어왔으나 최근에 발견된 우주팽창 이론에 따르면 언젠가는 우주가 너무 길게 펼쳐져 그 끝을 알 수 있을 만한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시간 그 자체를 추적할 만한 흔적도 없어지기 때문에 시간은 고갈될 것이다. 즉, 시간은 언젠가는 끝나는 유한한 존재인 것이다.
영문을 헤아리기는 어려운 구절. 적힌 대로 받아들이면, 공간이 무한해 지는 시점에 시간은 오히려 끝이 난단다. 하기사 공간이든 시간이든 내 한 몸 뉘이고 내 한 생 들일 만큼만 실제적 의미를 갖는 것이고 보면, 지적 호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는 하다.
잣대를 냉정하게 들이댄다면, 생명체 진화의 역사에서 백만 년을 넘나드는 사안은 현생 종種의 관심사가 못 되고, 만 년의 세월은 현대 문명과는 무관한 일이고, 천 년 언저리는 국가의 현안이 아니며, 백 년 안팎은 인간 개인의 이해관계를 넘어 선다. 그러니 어디쯤 경계를 두를 것인가의 문제.
[2]
(p.15) “하루 종일 앉아 숫자를 세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 들어요.”
카운트 백작의 숫자 세기 노래The Count ’ s Counting Song - 세서미 스트리트 - 중에서
각 장의 첫머리를 인용문으로 시작하는 흔한 포맷. 저자는 “우리는 언제부터 숫자를 세었을까?”라는 제목의 글에 카운트 백작의 숫자 세기 노래를 앞세웠다.
어릴 적 AFKN에서 낯이 익은 캐릭터. 교양수학서에서 만나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음산한 분위기에 ‘열’까지 세고 나면 요란스레 천둥이 내려 치는 설정이 어린 마음에 도무지 언짢았는데, 드라큘라 백작에서 설정을 빌렸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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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 십진법을 쓰는 이유는 숫자 10이 특별한 수학적 가치를 지녀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가 손가락으로 수를 세었기 때문이다. 양손을 합쳐 손가락이 8개인 심슨 가족은 아마도 8진법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마야인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모두 사용했기 때문에 20진법으로 수를 세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렇다면 바빌로니아인은 왜 60진법을 사용했을까? 우선 숫자 60이 지닌 특별한 수학적 속성 때문이다. 이 숫자는 상당히 잘 나누어진다. 즉 2, 3, 4, 5, 6, 10, 12, 15, 30 중 어느 것으로 나누어도 정확히 떨어지므로 활용도가 높다. 또 다른 이유는 60이란 숫자가 인체 해부학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손가락뼈를 이용하면 60까지 셀 수 있다. 일단 오른손 엄지손가락의 마디뼈는 제외한다. 이 손가락은 실제로 숫자를 셀 손가락이기 때문이다. 오른손에 남은 네 개의 손가락에는 각각 3개씩 총 12개의 마디뼈가 있다. 마치 바빌로니아인이 된 것처럼 지금, 오른쪽 엄지손가락으로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에 있는 마디뼈를 꾹꾹 눌러보면서 1부터 12까지 세어보자. 그리고 12까지 셀 때마다 왼손에 있는 다섯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것이다. 그렇게 왼손의 다섯 손가락이 모두 접혔을 때 12개씩 5묶음 되므로… 우리는 양손으로 총 60까지 셀 수 있다.
60진법을 인체 해부학에서 기원을 찾는 시도가 꽤나 그럴듯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저자 말마따나 바빌로니아인들이 일상에서 손가락의 마디뼈로 수를 헤아렸다면 그들의 숫자 역시 그런 문화를 반영해야 마땅치 않겠나. 그러나, 바빌로니아인들이 남긴 점토판의 쐐기 문자는 처음에는 손가락의 마디뼈처럼 셋씩 묶여 나가나, 10이 되는 순간 여느 십진법처럼 새로운 기호가 등장한다.
더구나 12에서 13으로 넘어가는 지점은 손가락뼈 세기에서는 꽤나 중요한 분기점임에도 불구하고, 12와 13은 각각 2와 3에 10을 더한 방식으로 표기되고 있어서, 어떤 두드러진 특징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집게손가락 첫마디부터 세기 시작한 수는 새끼손가락 첫 마디에서 갑자기 마디뼈와 표기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 후로는 60에 이를 때까지 손의 모양과 기호가 완전히 따로 노는 형국이어서 숫자만 보고서는 왼손 손가락을 몇 개나 접고, 오른 손은 어느 쪽 마디를 짚어야 하는지 쉽게 알기는 어려운 상태가 된다. 요컨대 실용적이라 하기는 도무지 쉽잖다는 것.
그래도 기호 문제만 내려놓고 나면, 한 손은 손가락의 마디뼈를 짚고 반대쪽 손은 손가락을 꼽아나가는 방법은 10과 12가 강력하게 조합된 육십갑자를 세기에 꽤 편리하겠다 싶다.
[4]
대개 12 혹은 60이라는 수의 장점을 약수의 개수가 많다는 데서 찾는데, 이런 설명은 연산기호나 수, 그리고 셈의 발달에서 나눗셈이 만만한 셈이 된 것이 아주 최근이 일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단위분수에 집착했던 이집트인들 역시 그런 처지.
[5]
원제는 <Little Ways to Live a Big Life: How to Count to Infinity>. 앞쪽은 시리즈명, 뒷쪽은 책 제목. 딱히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표현도 아닌데, 시리즈나 제목이나 과하게 의역을 했다.
[6]
55쪽짜리 소책자. 저자는 옥스포트대 수학과 교수.
대가의 평범한 글. 저자보다 출판사가 앞서는 책들이 대개 그렇다.
수학사를 소재로 삼은 수학교양서들은 대개 먼 옛날 어느 목동의 돌멩이과 가축의 짝짓기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칸토어에 이르는데, 이 책도 그리 다르지 않다.
평범한 소재를 재치있는 글재주로 장식하는 일보다는 투박한 문장에 통찰을 담는 일이 대가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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