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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220.불교

224 [현각] 공부하다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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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삶. 2008.1.28 초판 1쇄.

 

 

[1]

 

“당신의 가르침을 가장 간단하게 요약하면 무엇입니까?” 그러자 붓다가 말했습니다. “집착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머지는 군더더기.

       영생이 어쩌고를 떠들어 대는 그쪽 종교보다 불교가 하나 더 윗길인 이유. 물론, 종교와 종교인의 혼동은 금물.

 

 

[2]

 

만일 여러분이 ‘이 세상은 무상하다’라고 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어떤 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때 여러분은 사물과 돈, 권력, 명예, 명성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뿐 아니라, 나아가 여러분 자신의 생각으로 만든 세상까지도 영원히 곁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으로 만들어 내는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무상한 것입니다. 모든 생각, 모든 견해, 모든 느낌, 모든 조건, 그리고 모든 관념들은 본질적으로 다만 무상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그것들에 집착할 때, 그것이 곧 무지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어떤 고유하고 남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믿을 때, 우리는 그런 자신을 만족시키고자 합니다. 그런 자신을 먹여 살리고, 그런 자신을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고자 합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자신을 먹여 살리고 보호하려는 염원에서, 자만과 질투와 분노 같은 다른 모든 괴로움이 오는 것입니다. 그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입니다.

도킨스의 해석에 따르면 이 모든 사달의 원인은 DNA. 글쎄, 자연에서 DNA가 난 것이 아니라 자연이 DNA를 낳은 것은 아닐지. 결국 골디락스 존에 물질들이 뭉치게 된 것이 모든 사태의 원흉.

 

 

[3]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알기 전까지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모르는 것이다.

대강은 옳으나 부사가 틀렸다. 어떻게 죽는 게 어딨나, 그냥 죽는 거지. 물질로 돌아가는 날까지 따뜻한 일상을 지내는 것이 최선의 선택. 감정 혹은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짧게는 45억 년 길게는 138억 년만의, 유일무이한 기회.

 

 

[4]

 

죽어 갈 때, 가장 좋은 상태는 평화로운 상태입니다. 가장 좋은 상태란 우리를 에워싸고 울어 줄 가족들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어 가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할 뿐입니다.

어느 것 하나 두렵지 않은 것이 없던 선조들은 죽음이라는 것을 일상에서 떨치려 갖은 애를 썼다. 누구 하나 예외없이 어차피 간다. 새 사람이 난다고, 헌 사람이 사라진다고, 유난을 떨 하등의 이유가 도무지 있을 리가.

 

 

[5]

 

누가 잘해 주면 행복하고, 누가 나쁘게 대하면 기분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그 순간 붓다의 모든 가르침은 창문 밖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집착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나니.

 

 

[6]

 

벽안의 스님이라는 저자들은 뻔한 얘기를 장황하게도 늘어놓는다. 말한 것을 옮겨 적은 책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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