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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나무. 2009.7.7 초판 1쇄.
[1]
학교는 과정과 실체를 혼동하도록 ‘학교화’한다. 이처럼 과정과 실체가 혼동되면 새로운 논리, 즉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욱더 좋은 결과가 생긴다든가, 단계적으로 올라가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식의 논리가 생겨난다. 그런 논리에 의해 ‘학교화된’ 학생들은 수업을 공부라고, 학년 상승을 교육이라고, 졸업장을 능력의 증거라고 혼동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병원의 치료를 건강으로, 사회복지를 사회생활의 개선으로, 경찰보호를 사회안전으로, 과당경쟁을 생산적 노동으로 오해하게 된다. 그러한 ‘가치의 제도화’는 반드시 물질적 오염, 사회적 양극화, 심리적 무능화를 초래한다.
참 어려운 이야기. 그릇된 줄 알면서도 별 도리가 없는 주제. 존재에 대한 본질적 이해를 일깨우는 자연과학쪽 책들에 비해 사회학쪽 책을 읽으면 속만 쓰리다.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시민 대다수가 먹고사는 일에 신경 쓰느라 관심을 끊은 탓에 행정부나 입법부의 관계자들도 얼씨구나 손 놓은 상황. 이런 환경이니 교육부 정책기획관이라는 작자의 입에서 ‘민중은 개, 돼지니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 같은 헛소리가 나온다.
하기사 이해당사자들이 바꿀 생각이나 의지가 없다는데야 뭐 어쩌겠나.
[2]
전 세계에서 학교는 사회에 반교육적인 영향을 미친다. 학교는 교육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자금, 사람, 선의를 독점하고, 나아가 학교 외의 제도들이 교육에 관여하지 못하게 한다.
마지막 대목이 특히 문제. 대학졸업장이 없으면 그럴 듯한 회사에 지원할 기회조차 갖기 어려운 현실은 교육과 학교의 혼동이 빚어낸 결과다. 저자 말마따나 학교와 교육을 동일시하는 것은 영혼의 구제와 교회를 동일시하는 것과 같다.
건강한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교육 인프라는 필수불가결하지만, 그 교육을 학교라는 제도에 오롯이 위임하는 순간 학교는 기회의 배분을 즉각적으로 독점하고 나선다.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 이창호나 이세돌 정도는 되어야 그 영향력에서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고.
[3]
저자는 학교를 거듭 비판하지만 학교와 교육을 혼동하지 않는 것으로 족하다. 물론 그런 일이 실현될 가능성은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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