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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조선. 2003.4.18 초판 1쇄. 2003.8.16 초판 4쇄.
학교에서 시험을 잘 치르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 문제는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에 기반을 두지 않고 단순 암기에만 주력하고 있다. 질문과 정답의 일 대 일 대응으로 이뤄진 문제는 단순 암기로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의 문제들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험을 치르고 나면 공부한 내용을 잊어버리고 만다.
우리가 학교에서 치렀던 시험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는? (1) 셰익스피어 (2) 단테 (3) 보티첼리 (4) 마키아벨리”. 문제에서 요구하는 답은 ‘단테’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말이 안 된다. ‘가장 대표적인 작가’라는 것은 미학적 혹은 역사적 관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한심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더 비참한 현실은 문제를 내는 교사나 정답을 맞히는 학생이나 모두 보기에 나온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사도 학생도 모두 ‘르네상스’가 무엇인지, 단테가 어떤 작품을 썼는지, 왜 단테가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작가로 불리는지 알지 못한다. 그 대신 한국 학생들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작가’에 대한 답이 ‘단테’라는 것만 달달 외워서 기억하고 있다.
교과서에서는 다음에 나오는 것처럼 한심하게 사실에 대한 조합만 가르치고 있다. “[문제] 가가가 [보기] (1) 구구 (2) 타타 (3) 포포 (4) 코코 [정답] (2) 타타”.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가가가’와 ‘타타’의 관계만 암기하면 되고, 그러면 명문 대학에 합격하고, 졸업 후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결혼도 잘할 수 있게 된다는 식이다.
유감스럽긴 하지만 한국 학생들의 뇌에는 ‘가가가’와 ‘타타’의 관계처럼 의미 없는 조합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에 싫증을 내고 있고, 심지어는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까지 나오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어처구니 없는 질문 대신에 좀 더 합리적인 문제 유형을 한 가지 제안한다. “[문제] 단테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유를 한 페이지 내로 설명하라”. 이런 질문이 현실적으로 중고등학교 수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독일의 고등학교 시험에 나오는 문제이다. 위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단테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관계를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들은 모두 뇌의 조합들로 이어진다. 일단 이런 방식으로 공부하고 나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학생 때 공부했던 내용을 대부분 기억할 수 있게 된다. ‘가가가’와 ‘타타’ 식으로 배운 학생들은 단테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어떤 흥미도 갖지 못할 것이다.
‘공부는 암기’라는 주장은 결국 ‘공부는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이런 공부밖에 없는 나라다 보니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수험생 신분만 벗어나면 금세 깡그리 잊어버린다. 공부란 당연히 그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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