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사. 2015.12.28 초판 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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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문제는 형태가 조금씩 바뀔 뿐 출제 경향이 바뀌지는 않는다. 30년, 50년 동안 똑같은 참고서가 팔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수학의 정석>은 대부분의 내용이 개정되지 않은 채 몇 십 년째 가장 훌륭한 참고서로 사랑받고 있다. 입시 문제의 경향이 바뀌지 않음을 증명하는 근거다.
대학입시와 공부를 혼동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 목표가 입시와 변별에 있다 보니 공과대학 입학생이 고등학교 수학을 몰라서 쩔쩔 맨다. 코앞만 보면서 차를 몰면 비틀거리게 마련. 먼 곳을 바라봐야 똑바로 갈 수 있다. 교육이 괜히 백년대계겠나.
지난 60년간 암기력 위주의 입시 문제를 만들어낸 덕분에 창의력이나 응용력이 좋은 학생보다 엉덩이가 무겁고 많은 지식을 암기한 학생이 명문대에 많이 합격했다.
몇 번을 말하지만 입시는 암기력 경연 대회다.
그 대단한 공교육의 성과. 공교육의 모든 공부가 암기력 경연 대회로 이어진다는 점에는 어느 누구 하나 이견이 없는 듯. 변별을 내려놓지 않는 한 벗어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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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회에 진출하면 다양한 방식의 사고력이 필요하지만 입시에서는 무용지물에 가깝다. 가령 국어에서 독창적인 독해를 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한다고 해도 점수가 되지 않는다. 점수를 받으려면 채점관이 원하는 패턴의 모범 답안이 필요하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번뜩이는 영감으로 가득한 천재적인 답안보다 모범 답안과 일치하는 답안이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입시에서 천재적인 답안은 계산 실수 등으로 답이 틀리면 0점이지만 모범 답안은 답이 틀리더라도 부분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대학 입시에서 내신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배점이 높은 ‘서답형 문제’의 위세가 드높다. 풀이 따위는 적을 곳도 없는 학력고사나 수능에서는 없던 일이다. 문제는 교육 현장에 천재적인 답안을 채점할 능력이 있을 리 없다는 점. 해서, 능력 불문하고 ‘약속된 답안’의 작성을 연습한다. 공부보다는 변별에, 능력향상보다는 평가에 방점을 찍는 순간 예견된 사태.
지금이야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같은 대단한 이름의 제도로 명문화가 되어 있지만, 학교수학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을 문제 풀이에 동원하면 안 된다는 거야 제도와는 무관한 유서 깊은 전통. 해서, 고등학생은 함수의 극한 문제에 로피탈 정리를 쓰면 안 되고, 중학생은 이차방정식의 근과 계수와의 관계를 모르는 척 해야 한다. 교과과정이 내용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시기는 중학교 3학년 1학기 무렵. 무리수와 피타고라스 정리라는 거울의 양면을 어떻든 선후를 정해 가르쳐야 하는 처지다 보니, ‘피타고라스 정리’ 단원에 앞선 ‘무리수’ 단원에서는 넓이에 비춰 정사각형의 한 변 길이를 계산하는 무지막지한 방법을 가르치고 배운다. 이런 잣대를 들이대면 등차수열의 합 공식으로 1부터 100까지의 합을 얼른 계산해 냈던 초등학생 가우스 역시 감점의 대상이니, 이 나라 교육이 뭘 지향하는지는 참으로 불문가지.
[3]
수학에는 마력이 있다. 수학은 좋아질수록, 잘하게 될수록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풀고 싶다는 유혹이 커진다. 이것이 수학의 함정이다.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풀다보면 문제 풀이에 열중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또 문제를 푸는 과정 자체로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처음부터 빤하게 풀이가 보이는 간단한 문제까지 굳이 풀고 기뻐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 가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어떤 수재라도 수학의 함정에 빠지면 결국 범재에게 지고 만다. 이것은 제한 시간 안에 어려운 문제와 쉬운 문제를 구분해서 풀어야 하는 입시에서만 통하는 절대 진리다. 대학 입시에서는 진정한 수학 감각도, 재능도 필요 없다. 아이러니하지만 대학 입시에서는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 득점을 높일 수 있다.
한마디로 “입시에 성공하려면 수학을 절대로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이런 주장을 두고 이 나라 수학계는 어떤 반론을 내놓을런지.
개인적인 소회로는 수학자나 수학교육자들이 진정 수학을 만인의 교양으로 삼기를 바란다면 입시와 변별에서 수학이라는 교과목을 덜어내는 결단을 감행해야 한다고 결론내린 지 오래.
[4]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비결은 최대한 많은 영어 단문을 외우는 것이다.
백번 동의하나 내신 영어와는 상관없는 조언.
[5]
입시는 노골적으로 암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주장의 골자. 주요과목별로 외울 내용과 방법을 상세히 설명한다. 2002년 일본에서 출간된 것을 ‘번안’해서 2015년 말에 내놓았는데, 15년 세월 동안 이 나라 입시라는 게 딱히 바뀐 것이 없다 보니 저자의 큰소리는 여전히 유효. 하기사 장학사에 교장까지 역임한 교육학 박사라는 양반이 <공부는 암기력> 같은 제목의 책을 태평하게 내놓는 마당에 무슨 기대가 있겠나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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