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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400.순수과학

404 [오후]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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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북. 2019.7.19 초판 1쇄. 2019.7.31 초판 2쇄.

 

 

[1]

 

(p.133) 한민족을 백의민족이라 부르는데, 우리 조상들이 흰옷을 입은 건 패션 센스가 남달랐기 때문이 아니라 염색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권력자는 늘 색을 사용했다.

책은 도끼다.

       책이 강력한 도끼질이 되어 아둔한 정신을 깨우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책을 읽겠나.

       해서,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는 낱말을 별다른 의문 없이 ‘여백의 미’ 혹은 ‘한恨’ 같은 낱말들과 함께 우리네 한민족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었다면, 이런 문장은 문득 도끼가 된다.

       아하, 그렇구나. 사극에서 관리들이 붉고 푸른 옷을 입은 것을 보면서도 정작 우리 조상님들이 염색할 여력이 없어서 흰 옷을 입고 생활했다고는 생각조차 못했구나!

       아, 나의 아둔함이여!

 

이런 절절한 깨달음 뒤에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 민족이 백의를 숭상함은 아득한 옛날로부터 그러한 것으로서 수천년 전의 부여 사람과 그 뒤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의 역대 왕조에서도 한결같이 흰옷을 입었다”는 구절을 만난다면, 짐작컨대 색안경을 집어들 듯싶다.

       숭상 좋아하시네. 그저 염색할 여력이 없었을 뿐인데. 형편 좋던 양반네들은 붉고 푸른 옷을 잘만 입고 다니지 않았던가.

 

그러나 고려 충렬왕을 비롯해, 조선의 태조, 태종, 세종, 연산군, 인조, 현종, 숙종, 영조 등등이 수 차례를 거듭하여 백의금지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흰 옷을 워낙 사랑하는 탓에 왕명조차도 도무지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대한제국이 의복개량화를 내세워 색깔 옷을 권장할 때 을사늑약에 대한 반대 시위로 백의 착용이 확산되었다는 역사는 또 어떨까.

       그런 역사 앞에서라면, 저자 역시 “백의민족이라는 이름은 남다른 패션 센스가 아니라 염색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라, 그리 간단히 적어 내리기는 쉽잖았을 듯.

 

주강현이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에 적었듯, 조선시대 여성은 일단 가정을 꾸리면 물들인 옷을 입는 것이 예의였고, 상을 당했을 때처럼 특수한 경우에만 흰옷을 입었다. 게다가 흰옷에는 염색 과정의 생략을 상쇄하고도 남을, 때가 쉽게 타서 빨래품이 많이 드는 비경제적 색깔이라는 단점이 있다.

       그러니 우리 조상님들의 흰옷 사랑은 그 어떤 의지와 선호가 내포된 것이요, 일반 백성들은 염색한 옷을 입을 형편이 못 되었노라, 간단히 논할 사안이 분명 아니다.

       저자의 경쾌한 문장이 이 대목에서만큼은 살짝 경솔하달까.

 

 

[2]

 

(p.62) 화씨와 섭씨라는 명칭은 이를 고안한 ‘Mr. 파[화]렌하이트’와 ‘Mr. 셀[섭]시우스’를 중국어로 번안한 표현이다.

근현대의 조어란 그 얼마나 얄팍한지. 이런 낱말을 그대로 두고 쓰는 언중은 또 얼마나 게으른지.

 

폭넓은 상식을 선보이는 저자는 ‘번안’은 알아도 ‘음역’은 몰랐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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