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나무. 2018.4.20 초판 1쇄
[1]
(p.76)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천구에 대하여>에서는 지구가 둥글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가 아래와 같이 나와 있다.
근거 1: 월식이 일어나는 동안 달에 비치는 지구 그림자는 항상 둥글다.
근거2: 수평선을 넘어가는 배를 볼 때 먼저 선체가 보이지 않게 되고, 그 다음 돛이 사라진다.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년 생, 기원전 322년 몰.
기원전 300년이면, 한반도 연표에서는 박혁거세나 주몽, 김수로 같은 여러 시조들이 아직 알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절.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럴듯한 직관으로 썰을 풀어서 길고 긴 세월 동안 서양의 사고를 고착화시켰는데, 적잖은 헛소리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이미 월식이 달에 지구의 그림자가 비친 거라 단언했다는 점은 분명 놀랍다.
일식이나 월식이야 워낙 흔한 천체 현상이라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른 척 하기가 더 쉽잖고, 해서, 여러 지역에서 당연하다는 듯 이런 저런 설화가 만들어졌는데, 그보다 한참을 앞서 닥치고 지구 그림자를 주장했다니 대단한 합리.
범과 한 손으로 싸우고, 싸우는 소를 두 손으로 제압하고, 다리에서 떨어지는 말을 잡아 넌지시 끌어 올렸다던 태조가 해질녘 일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는 소복 차림을 하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비로소 소복을 벗었다는 조선왕족실록의 기록에 비춰 보면, 까마득한 옛날 아리스토텔레스가 선보인 담대한 직관은, 사뭇 남다르다.
[2]
(p.97) 달이 반달일 때 태양과 달을 이은 선이 지구와 달을 이은 선과 수직이라고 볼 수 있어.
삼각비를 써서 지구과 태양 사이의 거리를 구하는 대목.
거대한 직각삼각형이 등장하는, 우주적 스케일의 기하학 문제 풀이의 피날레.
에라토스테네스는 개기월식 때 달이 지구 그림자를 벗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달이 제 지름만큼 움직이는 시간의 네 배라는 점에서 지구 지름이 달의 지름의 네 배라는 걸 알아낸다. 일단 멀리 떨어진 행성의 크기를 알아내고 나면, 이제부터는 일사천리. 닮음이나 간단한 삼각비면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나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 등이 줄줄 딸려 나온다.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를 이용해 계산할 수 있는 태양의 사이즈는 덤.
[3]
(p.111)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지구는 정지해 있다.
탑 위에 돌을 떨어뜨릴 때, 만약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회전한다면 돌이 서쪽으로 치우쳐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로 밑에 떨어진다. 그러니 지구는 고정되어 있고, 태양과 달이, 행성들이 원을 그리며 돈다.
직관에 과하게 기댄 아리스토텔레스의 한계. 대야에 물을 담고 나뭇잎을 하나 띄운 후 손으로 몇 번 휘저어만 봤어도 탑 위에서 떨어뜨린 돌이 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을 텐데.
하기사 당장 사람 입 속 한 번 들여다 보지 않고 여성은 남성보다 치아 개수가 더 적다 말했던 관념의 대가이니, 무슨 실험인들 마뜩겠나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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