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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태자(원종)가 배알하니 쿠빌라이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고려의 세자가 스스로 오니 이는 하늘의 뜻이다."
라고 하였다.
강회선무사 조양필이 말하기를,
"고려는 비록 소국이나 20여 년간 군사를 동원하였어도 아직 신하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한 명의 병졸도 수고롭게 하지 않고 한 나라를 얻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한능검 심화 52회
1270년(원종 1년) 고려 정부는 몽골과 강화를 맺고 개경으로 환도하였다.
대몽 항전에 적극적이었던 삼별초는 개경 환도를 반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어 진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항쟁을 전개하였다.
- 23년 지방직 9급
충렬왕이 이분희 등에게 변발을 하지 않았다고 책망하였더니 그들이 대답하기를
"신 등이 변발하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오직 뭇사람들이 그렇게 하여 상례가 되기를 기다렸을 뿐입니다."
라고 하였다.
충렬왕은 입조하였을 때에 이미 변발하였지만,
나라 사람들이 아직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책망한 것이다.
- 한능검 심화 55회
대장군 인후와 장군 고천백이 원의 사신 탑납과 함께 원에서 돌아왔다.
어떤 사람이 탑납에게 말하기를,
"우리 고을 사람들이 대부분 응방에 예속되어 있으니,
나머지 가난한 백성만으로 어떻게 공억을 감당하겠습니까?
차라리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낫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왕이 재추들에게 말하기를,
"나라는 작고 백성은 가난한데다 가뭄까지 극성이니 응방을 폐지해야 하겠소."
라고 하니,
인후가 말하기를,
"응방은 황제께 청하여 설치한 것인데 어찌 갑자기 폐지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 한능검 심화 79회
응방은 사냥용 매의 사육과 훈련, 매사냥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충렬왕 때에 설치한 관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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