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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410.수학

410 [박영훈] 피타고라스학파의 집단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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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갸날. 2017.05.30 초판 1쇄.

 

 

[1]

 

(p.5) 12년 동안 수학을 배운다. 그렇게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을 들여 고생했건만, 그 내용이 실제 수학이라는 학문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정말 허탈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오늘의 학교 수학은 여전히 요리책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수학 학습을 요리 레시피를 익히는 것쯤으로 인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 공식에 대입하여 이렇게 식을 조작하면 답이 나온다’는 기계적인 문제 풀이를 수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시간을 들여 수학을 공부했건만 정작 수학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수학도 그렇고, 한국사도 그렇고.

       입시기관에 불과한 학교에 무슨 기대가 있겠냐마는.

 

 

[2]

 

(p.49) 수학적 문장에 담겨 있는 단어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기에 대단히 엄격하게 선정되었다. 마치 한 편의 시에 선택되어 담겨 있는 시어가 그렇듯이.

 

여러모로 뜯어볼 거리가 있는 문장. 형식주의와 직관주의의 논쟁이나 학교수학에서 다루는 주제의 변천사 등등.

 

 

[3]

 

(p.73) 고대 문명이 잉태된 그 어떤 사회에서도 신화가 만들어지고 전해내려온다. 신화를 만듦으로써 그리고 그 신화를 빌어서 인간은 자신의 삶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재앙과 비참함, 기쁨과 쾌락 모두를 신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불가항력적인 현상이나 사건에서 한 발짝 벗어나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1900년 이전의 인류의 지성이란 그리 의미를 둘 대상이 못 된다. 신화든 종교든 그 시절의 생각일 뿐.

 

 

[4]

 

(p.77) 델포이 신전에 내걸려 있다는 “너 자신을 알라”는 금언은 우리 자신이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임을 잊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나는 이 문구를 문자 그대로 ‘스스로를 잘 이해하라’는 의미라 생각해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이런 메시지라면 얘기가 다르다. 인간의 문명이란 것이 섹스와 죽음을 금기시 혹은 신성시하는 한 너 자신을 알기는 쉽지 않을 듯.

 

 

[5]

 

(p.113) 유리수의 ‘리’는 영어의 ratio를 번역한 단어이다. 따라서 유리수란 글자 그대로 비가 존재하는 수를 가리킨다.

 

함수든 유리수든 그 낱말에 쓰인 한자어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끝없이 이어지는데 아무리 그럴 듯한들 수비학numerology에 다름 아니다. 유리수는 유비수의 오역. 저자는 별 근거도 없이 리理가 ratio의 뜻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갑자기 ‘가비의 리’에서 ‘리’라는 글자가 비율의 뜻이었던가 혼란스러운데, 당연히 틀린 생각이다. 나로서는 비율을 ‘리’로 표현한 낱말을 만난 적이 없다.

 

 

[6]

 

“잃어버린 수학을 찾아서” 시리즈 제 3권. 피타고라스가 주제다 보니 유리수 얘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유리수와 분수의 차이를 곱씹은 계기. 유리수는 의미, 분수는 형태를 나타내는, 서로 결이 다른 낱말. 하여, 정수나 자연수처럼 분수꼴을 하지 않은 유리수가 있는 반면, 무리수나 복소수, 문자식도 가로줄이 끼어들면 분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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