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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는
신라 중원경 출신으로 아버지는 나마 석체이다.
유학을 공부하여 뛰어난 문장가가 되었다.
태종 무열왕 때 당의 사신이 가져온 국서에 난해한 내용이 있어 그에게 묻자 막힘없이 해석하였다.
그러자 왕이 감탄하였고 강수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 한능검 심화 79회
강수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 뒤쪽에 높은 뼈가 솟아 있어 모양이 마치 소의 머리 같았는데
그의 뛰어난 문장력과 외교적 활약에 감탄한 태종 무열왕이
"머리가 단단하고 똑똑하다"는 뜻을 담아 강수라는 이름을 지어 하사하였다.
청방인문표는 강수가 문무왕의 명을 받아
당나라에 억류되어 있던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의 석방을 요청하기 위해 작성하여
당나라 고종에게 보낸 외교 문서(표문)이다.
글이 매우 간절하고 설득력이 있는 청방인문표를 읽은 당나라 고종은 크게 감동하여
김인문을 즉시 석방하고 위로해 돌려보냈다.
당나라 장수 설인귀는
나당전쟁 초기 신라 문무왕이 백제의 옛 땅인 웅진도독부를 공격하고
고구려 부흥군인 안승을 지원하는 등
당나라에 반기를 드는 행위를 하자 이를 강하게 문책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문무왕의 명에 따라
671년(문무왕 11년) 7월 작성된 외교 문서가 답당설총관인귀서이다.
이는 답설인귀서 혹은 문무왕보서라고도 불리며
<삼국사기>와 <동문선>에 전문이 온전하게 기록되어 전해지는
신라시대의 핵심 외교 문서로
강수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답설인귀서는
백제를 평정하면 평양 이남의 땅을 신라에 주기로 했던 당 태종의 조칙을 상기시키고
신라가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당나라 군대의 보급에 최선을 다했음을 강조하고
두 나라를 평정하기 전에는 신라를 이용하더니
목적을 달성하자 신라를 압박하고 핍박하는 당나라의 태도를
토사구팽의 비유를 사용하여 비판하였다.
문무왕 13년(673년) 백제 사람에게 관직을 주었으며
그 관등은 백제에서 재직하였던 관직에 버금가게 대우하였다.
신문왕 6년(686년) 고구려인들에게 경관을 주었는데 고구려의 관품에 헤아려 주었다.
- 26년 군무원 지역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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