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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검은 옥대를 바쳤다.
신문왕이 놀라고 기뻐하여 오색 비단, 금, 옥으로 보답하고,
사람을 시켜 대나무를 베어서 바다로 나오자, 산과 용은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신문왕이 감은사에서 유숙하고
행차에서 돌아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의 천존고에 보관하였다.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 비가 오고 비올 때 개며, 바람이 잦아들고 파도가 평온해졌다.
이를 만파식적이라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                     - 삼국유사

- 한능검 심화 50회

 

681년(신문왕 1년) 신문왕의 장인인 진골 김흠돌이 왕권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키자

신문왕은 김흠돌을 비롯한 진골 귀족 세력을 숙청하였다.

 

대왕암이 내려다 보이는 이곳은 경주 이견대입니다.
선왕을 기리며 감은사를 완공한 신문왕은 이곳에서 용을 만나는 신묘한 일을 겪었고,
이를 통해 검은 옥대와 만파식적의 재료가 된 대나무를 얻었다고 합니다.

- 한능검 심화 67회

 

국학은 예부에 속하였는데, 682년(신문왕 2년)에 설치하였다.
학생들은 글을 읽어 세 등급으로 벼슬길에 나가는데,
춘추좌씨전, 예기, 문선을 읽어 그 뜻에 능통하고 아울러 논어, 효경에도 밝은 사람을 상품으로,
곡례, 논어, 효경을 읽은 사람을 중품으로,
곡례, 효경을 읽은 사람을 하품으로 하였다.               - 삼국사기

- 한능검 심화 79회

 

신문왕 때 국학의 최고 책임자인 경이 설치되면서

예부에 속한 정식 교육기관으로 완비되었고

경 이하 박사, 조교, 대사, 사 등의 관리를 두었다.

 

신문왕은 689년(신문왕 9년) 봄 정월에 중앙과 지방 관리들의 녹읍을 폐지하고
해마다 조를 차등 있게 주고 이를 일정한 법으로 삼았다.            -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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