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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은 상주 가은현 사람이다.
왕의 총애를 받던 측근들이 정권을 마음대로 휘둘러 기강이 문란해졌다.
기근까지 겹쳐 백성들이 떠돌아다니고, 여러 도적들이 봉기하였다.
이에 견훤이 몰래 왕위를 넘겨다보는 마음을 갖고
드디어 무진주를 습격하여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아직 감히 공공연하게 왕을 칭하지는 못하였다.
서쪽으로 순행하여 완산주에 이르니 그 백성들이 환영하였다.              - 삼국사기

- 한능검 심화 50회

 

내(견훤)가 삼국의 기원을 찾아보니,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뒤에 신라가 일어났다.
그런데 당 고종이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백제를 공멸하였으니
지금 내가 어찌 완산(전주)에 도읍하여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                       - 삼국사기

- 26년 지역인재 9급

 

견훤은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경애왕이 구원을 요청하자,
태조는 장수에게 명하여 정예 병사 1만 명을 보내 구원하게 하였다.
견훤은 구원병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을 알고,
겨울 11월에 갑자기 왕경에 침입하였다.
경애왕은 비빈, 종실 친척들과 포석정에 가서 연희를 즐기느라
적병이 이르는 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 삼국사기

- 한능검 심화 58회

 

견훤이 신라의 수도로 들어갔다.
포석정에서 연회를 벌이고 있던 경애왕은 적의 병사들이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 함께 달아나 성의 남쪽에 있는 별궁에 숨었다.
견훤은 경애왕을 찾아내고 핍박하여 자결하게 하였다.

- 한능검 심화 75회

 

견훤은 경애왕의 족제인 김부(경순왕)에게 왕위를 잇게 하였다.
그런 후에 경애왕의 아우 효렴과 재상 영경을 사로잡았다.

- 한능검 심화 54회

 

왕건은 정예 기병 5천을 거느리고 공산 아래에서 견훤을 맞아서 크게 싸웠다.
왕건의 장수 김락과 신숭겸은 죽고 모든 군사가 패배했으며,
왕건은 겨우 죽음을 면하였다.                         - 삼국유사

 

왕건이 직접 정예 기병 5천 명을 이끌고 가서
공산의 동수에서 견훤을 요격하였으나 불리하였다.
견훤의 병사들이 왕을 에워싸서 매우 위급한 상황이 되자
대장 신숭겸과 김락이 힘을 다해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전군이 패배하였고 왕건은 겨우 목숨을 건졌다.               - 고려사

 

927년 견훤은 신라를 공격해 경주를 함락하였다.

경애왕은 자살하였고, 신라는 고려의 왕건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왕건과 견훤은 공산(대구 팔공산) 일대에서 전투를 벌였고 후백제가 크게 이겼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는 우리 역사 속 충신, 효자, 열녀 등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는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벌어진 공산 전투 당시
위기에 빠진 왕건을 구하기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장절공 신숭겸이 그려져 있습니다.

- 한능검 심화 78회

 

견훤이 고창군을 포위하자 유금필이 왕에게 아뢰기를,
"싸워 보지도 않고 먼저 패배를 걱정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신은 군대를 진격해 서둘러 공격하기를 바랍니다."
라고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 한능검 심화 75회

 

930년(태조 13년) 왕건은 고창(안동) 일원에서 견훤의 군대와 싸워 승리하였다.

이후 왕건은 고창군을 '동쪽을 편안하게 했다'는 뜻의 안동부로 승격시켰다.

안동 지역의 민속놀이인 차전놀이는 고창 전투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견훤은 넷째 아들 금강이 키가 크고 지혜가 많아 특히 아끼어 왕위를 전하려 하니,
금강의 형 신검, 양검, 용검 등이 이를 알고 몹시 근심하고 번민하였다.

- 한능검 심화 54회

 

파진찬 신덕, 영순 등이 신검에게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하고 사람을 보내 금강을 죽이도록 권하였다.
신검이 대왕을 자칭하고 국내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교서에서 이르기를,
"왕위를 어리석은 아이에게 줄 뻔하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상제께서 진정한 마음을 내리시니
군자들이 허물을 고쳤고 맏아들인 나에게 명하여 이 한 나라를 다스리게 하셨다는 점이다."
라고 하였다.

- 한능검 심화 67회

 

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당했던 견훤은

가까스로 금산사를 탈출하여 왕건에게 투항하였다. (935년)

 

왕건을 신검의 군대가 막아서자 일리천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다.
왕건이 견훤과 함께 병사들을 사열한 후 (후략)
신검이 양검, 용검 및 문무 관료들과 함께 항복하여 오니,
왕건이 그를 위로하였다.                         - 고려사절요

- 한능검 심화 48회

 

936년의 일리천 전투는

후삼국 통일의 마지막 전쟁으로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일리천에서

왕건과 견훤의 고려와 신검의 후백제가 맞붙은 후삼국 최대이자 마지막 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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