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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원의 반란 세력 우두머리 양길이 부하 궁예를 보내 기병 1백여 명을 거느리고
북원 동쪽 마을과 명주 관내의 주천 등 10여 군현을 습격하였다.
그때 신라가 쇠퇴하여 도적떼가 다투어 일어났다.
궁예는 고구려의 땅에 의지해 철원에 도읍하고 나라 이름을 태봉이라 하였다.

- 한능검 심화 79회

 

북원의 도적 우두머리인 양길은 궁예가 자신을 배신한 것을 미워하여
국원 등 10여 곳의 성주들과 그를 칠 것을 모의하고 비뇌성 아래로 진군하였다.
그러나 양길의 병사는 패배하여 흩어져 달아났다.                    - 삼국사기

- 한능검 심화 71회

 

 

궁예가 나주의 상황을 근심하여 드디어 왕건에게 가서 지키도록 명령하였다.
품계는 한찬으로 올리고 해군 대장군으로 삼았다.

궁예는 백성을 한낱 지푸라기처럼 여기고 오직 자기의 욕심만을 따랐다.
그리고 참위설을 믿어 갑자기 송악을 버리고 부양(철원 북부)으로 돌아가 궁궐을 세우니,
백성은 공사에 시달려 농사철을 빼앗겼다.

- 한능검 심화 77회

 

궁예는 904년(신라 효공왕 8년) 국호를 마진으로 고치고

관제를 정비하면서 최고 중앙 관부로 광평성을 설치하였다.

광평성은 고려 초기까지 그대로 이어져

백관을 총괄하고 정사를 논의하는 핵심 기구로 기능하였고,

982년(고려 성종 1년) 내사문하성 등 다른 관제로 통합,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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