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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
- 삼국사기 신라본기
3년 4월 당이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왕에게 대도독의 관작을 내리다 3년 5월 복신과 도침이 부여풍과 함께 백제의 부흥을 꾀하다 8년 9월 고구려 왕이 항복하다 10년 6월 검모잠이 안승을 임금으로 받들어 귀순하자 이들을 금마저에 머물게 하다
- 한능검 고급 40회
12월에 황제가 함원전에서 포로를 받아들였다.
황제가 왕은 정사를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하였기에 용서하여 사평태상백원외동정으로 삼았다.
천남산은 사재소경으로, 승려 신성은 은청광록대부로, 천남생은 우위대장군으로 삼았다.
천남건은 검주로 유배를 보냈다.
5부, 176성, 69만여 호를 나누어 9도독부, 42주, 100현으로 만들고,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두어 이를 통치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 한능검 심화 71회
당은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킨 직후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였다.
검모잠이 남은 백성들을 거두어 신라로 향하였다.
안승을 맞아들여 임금으로 삼았다.
다식 등을 신라로 보내어 고하기를,
"지금 신 등이 나라의 귀족 안승을 받들어 임금으로 삼았습니다.
원컨대 변방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 영원토록 충성을 다하고자 합니다."
라고 하였다.
신라 왕은 그들을 금마저에 정착하게 하였다.
- 한능검 심화 55회
검모잠이 국가를 다시 일으키기 위하여
당을 배반하고 보장왕의 외손 안승을 세워 임금으로 삼았다.
당 고종이 대장군 고간을 보내 행군총관으로 삼고 병력을 내어 그들을 토벌하니,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달아났다.
- 한능검 심화 69회
검모잠은 고구려 왕족인 안승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구려 부흥운동을 이끌었으나,
두 사람이 갈등한 끝에 670년 안승에게 살해되었다.
안승은 신라에 투항하였다.
신라 문무왕은 안승을 보덕국의 왕으로 책봉하고 금마저(익산)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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